자기장 이용한 디가우징 동원…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하드디스크도 훼손
법원 "퇴임법관 통상적 절차 따른 것"…검찰, 실물 확보해 복구 시도 방침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재직 시절 사용하던 사법부 PC 하드디스크가 고의적으로 훼손돼 사실상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사법행정 수뇌부였던 이들의 PC 하드디스크가 이른바 '재판거래'를 비롯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밝히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고 법원행정처에 임의제출을 요청했지만, 이 같은 이유로 받지 못했다.
26일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이날 오후 법원행정처로부터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가 이른바 '디가우징' 방식으로 훼손됐다는 답변을 받았다.
디가우징은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데이터를 물리적으로 삭제하는 기술이다. 전산 정보로 된 증거를 인멸하는 대표적 형태로, 사실상 복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이 쓰던 하드디스크는 퇴임 이후인 지난해 10월 디가우징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법원의 2번째 자체조사가 진행 중이던 때다.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는 지난해 6월 퇴임 당시 손상됐다.
다만 대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처장의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처리를 두고 "퇴임 법관의 전산장비에 대한 통상적인 업무처리 절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전산장비 운영관리 지침과 재산관리관 및 물품관리관 등의 지정에 관한 규칙 등 통상적인 업무처리 절차에 따라 디가우징 등의 처리를 한 뒤 보관하고 있으며 관련 사실은 검찰에도 문서로 답변했다"고 말했다.
대법원 예규인 전산장비 운영관리 지침은 사용이 불가능해지거나 사용 연한이 지난 전산장비는 '불용' 처분하고 파일을 완전히 소거하도록 규정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이상 고위직이 사용한 PC의 경우 직무 특성상 다른 사람이 물려받아 쓰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대법관들의 하드디스크도 같은 방식으로 조치해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들 하드디스크가 훼손됐더라도 실물을 넘겨받아 복구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법원 내부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던 때 손상된 만큼 경위를 파악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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