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극도로 편향되면 시장 왜곡…재분배 노력해야"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27일 "부(富)의 분배는 상상보다 훨씬 불평등할 수 있다"며 "부가 극도로 편향되면 시장이 왜곡되므로 재분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 경제학자로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크루그먼 교수는 이날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서울 여의도 전경련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 특별대담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크루그먼 교수는 "현재 뉴욕시립대 대학원에서 소득분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조세회피처에 숨겨진 부가 어마어마하다"면서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상속에 대해 과세하고 세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는 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성장의 어두운 단면"이라며 미국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코끼리 곡선'(Elephant graph)을 인용했다.
코끼리 곡선은 세계화가 활발히 진행된 1988∼2011년 전 세계인을 소득 수준에 따라 100개의 분위(가로축)로 줄 세웠을 때 실질소득 증가율(세로축)이 얼마인지를 보여준다.
크루그먼 교수는 "코끼리 곡선의 맨 왼쪽에 해당하는 극빈층의 소득 상황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고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 일부 빈곤국은 여전히 극빈한 지역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그는 "맨 오른쪽 C 지점은 글로벌 상위 1% 계층이며 A 지점은 중국 및 개발도상국의 중산층을 의미한다"면서 "이들의 소득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극빈층과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한 원인의 하나로 무역 확대를 꼽았다.
세계대전 이후 국제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초세계화'가 진행돼 교역 능력을 갖춘 최상위층과 중간계층이 급격히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코끼리 곡선의 B 지점은 선진국의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을 의미한다"며 "극빈층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소득은 정체됐고 불평등은 확대됐다"고 덧붙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한국 역시 대단한 경제성장을 거뒀고 부의 분배를 통해 생활이 개선됐지만, 현재는 (평등 정도가) 과거와 같은 수준이 아닐 것"이라며 "이런 현상은 당연히 긍정적이지 않으며, 발전 결과를 공유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는 사회·정치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데, 미국이 그 부정적인 것의 선봉에 서있다"며 미국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미국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부는 축적되지만, 평균 수명은 계속 줄고 노동자 계급 사망률은 높아진다"며 "문제 해결을 바라면서 정치적 극단주의가 부상하게 되고, 이는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양극화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라며 "다만 분명한 사실은 극빈층을 글로벌 경제에 편입시키지 않는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대담 좌장을 맡은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크루그먼 교수에게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인상 등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크루그먼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들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전략으로 임금 수준을 변경하는 '사전 분배'와 세수를 활용해 하위계층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재분배' 등 두 가지가 중요하게 논의된다"면서 "두 가지 모두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으며,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의 근로시간 상한선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든 것과 관련해 "52시간도 이미 긴데, 선진국인 한국이 그렇게 많은 시간 일한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미국은 이미 수세대 동안 주당 40시간 근로를 유지해왔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측은 "크루그먼 교수가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이란 뜻으로 잘못 이해한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날 대담에 배석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소득 양극화의 원인은 근래 과학기술이 '숙련 편향적'으로 발달하면서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가 커진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부의장은 "소득 양극화를 해결하려면 교육기회와 직무능력의 격차를 좁히기 위한 관련 제도와 정책 보완이 필수"라며 "급속한 기술변화에 따른 근로자의 숙련 향상을 위해 근로자 직무교육·훈련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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