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욱 한중연 원장 "한류 뒷받침 위해 학술진흥 절실"

입력 2018-06-28 06:00   수정 2018-06-28 10:25

안병욱 한중연 원장 "한류 뒷받침 위해 학술진흥 절실"
"개원 40주년 맞아 연구자 지원 강화, 한국학 학술용어 정리"
"한국학은 한국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 자산"



(성남=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류는 우연의 소산이 아닙니다. 2천 년간 쌓은 민족문화가 피운 꽃입니다. 한류라는 트렌드를 지속하려면 학문의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한국학을 종합적으로 진흥해야 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임도 막중합니다."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개원 40주년을 맞아 지난 27일 진행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조선 세종과 정조가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이유가 학문 진흥에 있는데, 우리 정부는 70년간 학술정책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중연은 1978년 6월 30일 한국학 진흥과 민족문화 창달을 위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명칭으로 개원했다. 1980년 한국학대학원을 만들었고, 1996년 한국학정보센터를 설립했다. 기관명은 2005년 현재와 같이 변경됐다.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작년 11월 취임한 안 원장은 한중연 40년 역사를 돌아보면서 10년 6개월에 걸친 연구와 편찬 작업으로 제작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최고 성과로 꼽았다.
그는 "민족 문화유산을 집대성한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온라인에 보급되면서 일반 대중이 한국학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며 "구술을 채록해 만든 구비문학대계와 가문에서 대대로 전하던 고문서를 수집해 발간한 고문서집성도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안 원장은 "설립 초기와 1980년대에는 한중연이 정치적 이념 교육을 위해 동원된 장소라는 부정적 인식이 있었다"고 지적한 뒤 "연구자 한두 명이 정부 정책을 지나치게 옹호한 탓에 연구원 전체가 오해를 받은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취임 직후 간담회에서 한중연을 '체계 없는 백화점'이라고 비판한 안 원장은 인터뷰 중에도 "구슬이 서 말인데, 꿰어서 보배는 아닌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안 원장은 "100명 내외인 연구 인력은 개별적 역량이 높지만, 그동안 잡다한 업무를 많이 했던 것 같다"며 "한중연이 해야 하는 일과 한중연만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에 비유하면 한중연은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자동차나 선박을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연구소나 대학도 할 수 있는 연구를 다 끌어안아서는 안 됩니다."
안 원장은 "한중연은 대중보다는 전문가를 위한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며 "한중연이 고답적 학문을 하고 성과를 내면, 이를 바탕으로 다른 연구기관이 대중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중연 존립 근거인 한국학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안 원장은 "개원 당시에는 우리나라 전통, 풍속, 언어, 문학, 역사, 예술, 종교가 한국학 주제였다"며 "지금은 한국인이 세계와 교류하고 경쟁하기 위해 하는 학문은 모두 한국학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퇴계 이황의 학문은 한국학인데, 퇴계는 중국 학자인 공자나 주자도 연구했다"며 "오늘날 한국 학자가 하버마스나 셰익스피어를 공부해도 한국학이고, 외국 학자가 한국과 관련된 주제에 천착해도 한국학"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학은 한국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 자산이자 지적 탐구 활동"이라고 정리했다.
안 원장은 재임 기간에 세 가지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중 첫 번째가 박사 연구자를 위한 '태학사' 프로젝트다.
그는 "매년 10∼20명을 뽑아 5년간 매월 500만원을 지원해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내도록 하겠다"며 "대상자는 한중연이 선발하지 않고 각 대학에서 추천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사업으로 중견학자 지원을 꼽고 "태학사 프로젝트처럼 각종 잡무에 시달리는 학자들이 연구에만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안 원장이 기획한 마지막 사업은 이미 진행 중인 한국학 학술용어 정리 대계다. '식민사학'이나 '내재적 발전론'처럼 두루 사용되지만, 신뢰할 수 있고 명확한 설명이 없는 용어를 한중연이 정의하고 해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학 연구 수준과 과제를 전체적으로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대략 100∼200개 학술용어를 정리하면 충분하리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한중연은 개원 40주년을 맞아 28일 '대문명 전환기의 한국학: 새로운 100년을 향해'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29일에는 음악회를 개최한다.
안 원장은 "9월에는 9회를 맞은 한국학대회를 한중연에서 열어 한국학 학자들이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고, 11월에는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학문을 조명하는 수준 높은 학술대회를 진행할 것"이라며 "프랑스혁명 230주년과 3·1 운동 100주년인 내년에는 프랑스혁명부터 촛불혁명까지 민주주의를 고찰하는 학술대회를 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중연이 50주년 때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구기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학자를 양성하고 내실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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