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사상가들이 작은 꿀벌에 매료된 이유는

입력 2018-06-29 12:34  

서구 사상가들이 작은 꿀벌에 매료된 이유는
신간 '꿀벌과 철학자'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알고 보면 역사상 꿀벌만큼 사람을 매료시킨 동물도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꿀벌이 자연과 문명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사에 관한 저서에서 581종에 달하는 동물을 다뤘는데 꿀벌에 대해 인간 다음으로 많은 설명을 달아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 만물에 저마다 자기 자리가 있어 합목적적 기술이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세상의 형이상학적 조화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존재가 꿀벌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뿐만이 아니다. 시대와 문명을 불문하고 수많은 사상가가 꿀벌에서 세상의 숨은 이치를 발견하고 자연의 섭리를 밝혀줄 답을 구했다.
신간 '꿀벌과 철학자'(미래의창 펴냄)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부터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사상계 전반에서 펼쳐진 꿀벌의 활약을 추적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타부아요, 피에르앙리 타부아요 형제다. 동생은 파리 소르본대 철학 교수이며, 형은 프랑스 오트루아르 지역에서 전문 양봉가로 20년 넘게 꿀벌을 기르고 있다.
꿀벌은 놀라운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을 갖고 있다.
날개 춤으로 동료에게 먹이의 특징과 방향을 알려주는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수백만 년 동안 서로 만난 적 없는 유럽과 아시아의 꿀벌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단다.
꿀벌은 똑똑할 뿐만 아니라 헌신적이고 이타적이며 근면 검소한 데다 위생과 청결 면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덕분에 꿀벌을 인간 조건을 비추는 거울이자 이상적인 삶의 한 양상으로 바라보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고대 선인들은 꿀벌을 철학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지혜로운 동물로 여겼다. 그리스와 로마 작가들은 꿀벌을 올바른 덕목의 표본으로 삼고 벌집을 이상적인 사회로 간주하며 벌집 안에서 노동, 가족, 조국 등의 개념을 발견했다.
중세에는 꿀벌이 성모 마리아의 처녀성을 증명하는 존재로 칭송받았다.
구세주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탄생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중세 교부(敎父)들은 "그렇다면 꿀벌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당시까지는 벌들의 교미 장면이 인간에게 한 번도 목격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상의 존재로 사랑받던 꿀벌이 구약성서에는 자주 등장하지만, 신약성서에선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은 예수만이 독점해야 한다고 믿었던 기독교도들이 꿀벌을 예수의 경쟁자로 생각해 배척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내놓는다.
꿀벌은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에도 화려하게 등장한다.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대변하는 귀족들의 각종 문장(紋章)에 대항할 상징물로서 꿀벌이 다른 동물을 제치고 선택됐다.
책은 역사적인 검토를 거쳐 꿀벌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비교→이상화→숭고화→거리 두기'라는 네 단계 과정을 거치며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과학의 발전으로 꿀벌을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던 비밀스러운 습성들이 규명됐지만, 꿀벌의 아우라는 건재하다.
꿀벌은 여전히 인류의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자 인류의 운명을 가늠해줄 척도로서 종종 언급된다.
"만약 지구상에서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그로부터 4년 후 멸망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남겼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현대인의 꿀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인터넷상에서 입소문을 뜻하는 표현인 '버즈'는 꿀벌의 윙윙거리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며, 무선 조종 비행기 '드론' 역시 수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꿀벌을 바라보는 저자들의 시선은 의외로 냉정하다.
"그러니 엄정하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감성적인 매력만 적당히 취하면 된다. 벌집 안에서 민주주의를 되살릴 가치를 발견한다거나 자본주의의 쇄신을 위한 기적의 해법을 바라지 말자는 이야기다. 벌집 탐사는 분명 매력적인 일이다. 이는 사고의 반경을 넓혀줄 수도 있고, 논의의 방향을 풍성하게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벌집 안에서 오늘날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해줄 실질적인 해법을 조금이라도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배영란 옮김. 352쪽. 1만6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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