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공익법인, '5% 룰'에 기대 맘대로 지분 매입·매각
삼성·한진·금호아시아나·현대차 등 악용 의심 사례 다수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대기업 총수들이 공익법인에 재산을 출연해 자선·교육 등의 분야에서 벌이는 사회 공헌 활동은 적극 장려할만하다.
공익법인에 주식을 증여할 때 최대 5% 지분까지 상속·증여세를 면제해주는 이른바 '5% 룰'을 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5% 룰'이 여전히 일부 공익법인에는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멋대로 사고팔면서 총수지배력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규제 구멍'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익법인이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거나 내부거래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배경이다.
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공익재단은 2016년 2월 삼성물산[028260] 주식 200만 주를 사들였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불거진 신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결국, 재단이 삼성물산 주식을 매입하면서 삼성그룹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실질적인 지분율은 16.5%에서 17.2%로 상승하게 됐다.
대기업이 공익법인을 통한 지분 우회 확보로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했다는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사례다.
공익법인은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는 '우회 통로'로도 자주 이용된다.
한진그룹의 총수인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003490]이 재무건전성 확보를 위해 진행한 4천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정석인하학원의 출자 규모는 52억원이었다.
정석인하학원은 이중 45억원을 한진[002320]의 다른 계열사로부터 현금으로 받아 충당했지만, 증여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정석인하학원이 증여세가 면제되는 공익법인이기 때문이다.
정석인하학원이 출자한 대한항공은 직전 5년간 배당 내역이 없었다. 공익법인의 고유목적 사업과 무관한, 순수한 대한항공 지원을 위한 출자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회장이 이사장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금호산업[002990] 주식을 시가보다 비싸게 사들여 총수의 경영권 분쟁을 측면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이후 금호산업 주식을 매각한 돈으로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금호타이어[073240] 지분을 사들여 부실 계열사 지원에 동원됐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를 피하기 위해 지분을 조정할 때 공익법인은 총수 입장에서 '훌륭한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이노션[214320]과 글로비스는 총수일가 지분율이 각각 80.0%, 43.4%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을 일부 출연받으면서 이노션과 글로비스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일감 몰아주기 기준(30%)의 턱밑인 29.9%까지 낮아지게 됐다.
결국, 두 계열사는 정 회장의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됐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위는 공익법인과 관련된 제도 개선안을 논의 중이며 외부 의견수렴을 거쳐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roc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