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위기' 봉합해 결속다진 EU…미해결 난제로 살얼음판 여전(종합)

입력 2018-06-29 23:03  

'난민 위기' 봉합해 결속다진 EU…미해결 난제로 살얼음판 여전(종합)
난민심사센터 선정·난민구조선 입항 등 난제 산적
독일 기사당, 합의에 긍정적 신호…메르켈, 위기 모면할 듯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난민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극심한 분열위기에 처했던 유럽연합(EU)이 우여곡절 끝에 숨을 돌리게 됐다.
EU 28개국 정상들이 28일(현지시간)부터 이틀에 걸친 밤샘 회의 끝에 난민정책의 합의안이 담긴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면서 일단 눈앞의 위기를 봉합했다.
난민 문제에 대해 제각각의 해법을 내며 동서, 남북으로 갈라졌던 EU가 다소 여유를 갖고 재정비할 시간을 얻게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난민정책에 대한 이견으로 대연정 붕괴 가능성까지 제기된 독일도 갈등 국면이 진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합의안이 구체적이지 않아 언제든 분열과 대립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이번 합의로 EU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되자 유럽 주요 국가의 증시는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고, 유로화도 강세를 나타냈다.

◇ 예상 밖 합의…EU 분열 현실화에 대한 우려 작용
이번 정상회의에 앞서 난민정책에 대한 합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EU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회원국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탓이었다.
더구나 반(反)난민 정서가 점점 강해지는 회원국 내의 국내 정치 상황은 정상들의 운신 폭을 좁혔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주도적으로 회원국 간 이견 조율에 나섰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공개적으로 합의가 어렵다며 여러 차례 암울한 전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합의 실패 시 EU 회원국 간의 난민정책이 정면으로 충돌해 EU의 분열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정상들을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회원국들이 제각각 난민정책을 실행했다가는 국경에서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난민 강경파인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최근 같은 반(反)난민 성향의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과 '자발적인 축'을 형성하기로 합의해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듯했지만, 이들 국가도 충돌을 예고해왔다.
기독사회당 대표인 제호퍼 장관이 EU 회원국에 이미 망명신청이 된 난민을 돌려보내는 정책을 내놓자, 오스트리아는 이에 대비한 대규모 난민 유입 차단 훈련을 한 것이다.
난민정책 합의에 실패하면 지중해를 통한 북아프리카 난민의 유입을 막을 길이 요원해진다는 점도 정상들의 등을 떠민 요인이다.
게다가 주요 난민 유입국인 이탈리아는 유럽 난민정책의 근간으로 첫 도착 국가에서 망명신청을 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 상호 양보…구체성 부족으로 향후 분열 소지 다분
이런 배경 속에서 EU 28개국 정상들은 유럽대륙에 난민의 망명신청을 처리하는 합동난민심사센터를 건립하고, 회원국 내 난민 이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데 합의했다.
북아프리카와 같은 EU 역외에 입국 플랫폼을 세우는 것도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난민이 지중해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으로의 위험한 밀입국을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또한, 망명 자격을 갖춘 난민이 EU 역내에서 재할당 되도록 했다.
역외 국경·해안 경비를 담당하는 프론텍스(Frontex)의 인력과 권한을 늘리는 데에도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서로 조금씩 양보해 타협한 셈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EU 회원국 간 별도의 통행절차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한 솅겐 조약에 따라 난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지지했지만, 반난민 성향의 정권이 들어선 중·동유럽 국가들은 이동의 제한을 주장했고 실제 국경 통제를 강화해왔다.
독일과 프랑스가 역내 난민 이동의 통제를 받아들인 대신, 중·동유럽 국가들은 그동안 반대해온 난민 재할당 정책을 수용했다.
그러나 합동난민심사센터를 설치할 국가를 정하는 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부분의 국가가 기존 난민에 대해서도 손사래를 치는 상황이다.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난민을 막는 것도 여전히 난관으로 남아있다.
EU는 이번 합의에서 리비아 정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난민을 막겠다는 입장이지만, 원활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들 정부에 지원해야 할 자금을 놓고서도 EU 내 회원국 간에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난민구조선의 입항 문제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촉매제다.
난민을 재할당하는 문제도 국가별 재할당 인원과 이와 관련해 동유럽 국가를 상대로 한 EU 지원금 규모 등으로 갈등을 빚을 소지가 다분하다.
이번에 합의에서 제외된 더블린 조약의 개정 문제도 여전히 갈등의 불씨다.
이런 탓에 메르켈 총리는 정상회담 이후 "다양한 관점을 연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정상회의에 앞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양자, 삼자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 메르켈, 대연정 붕괴 위기서 탈출하나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합의 성사 과정에서 가장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합의가 안 될 경우 정상 중에서 입을 타격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국내에서 제호퍼 장관의 난민 강경책에 반대하며 EU 공동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제호퍼 장관과 기사당은 메르켈 총리에게 EU 정상회의 때까지 대안을 가져오라며 말미를 줬다.
이번 합의에서 EU 내 난민의 이동을 통제하기로 해 기사당의 요구가 어느 정도 수용된 만큼, 메르켈 총리의 위기 탈출 가능성도 커졌다.
기사당은 일단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기사당의 한스 미헬바흐 부대표는 독일 ARD방송과 인터뷰에서 "유럽이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긍정적 신호"라며 "우리는 (메르켈 총리에게) 협력하고자 한다. 기독민주당과의 동맹은 절대적 우선순위를 점한다"고 말했다.
기사당은 내달 1일 지도부 회의를 열어 EU 합의안에 대해 평가하고 제호퍼 장관이 내놓은 난민 강경책의 재추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lkb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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