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가 차량공유 발목 잡는 사이에 SK·현대는 동남아에 투자
뒤늦게 혁신성장본부 발족…"靑수석 교체·대통령 의지 표명 계기로 성과 기대"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꼭 풀어야 할 어려운 것은 안 하고 변죽만 울린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 혁명위원회 민간위원인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혁신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규제개혁 시도에 관해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혹평했다.
그간 규제개혁이나 혁신성장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 2년째를 맞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 혁신성장 내걸었지만 핵심 규제개혁 소극적
정부는 작년 7월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혁신성장을 제시하고 '과도한 규제나 관행 등이 융·복합 등 창조적 파괴를 제약해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도 혁신 역량이 약화했다'고 진단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주요 신산업 분야에서 규제개혁의 핵심인 이해관계 조정을 제대로 못 했고 정부 출범 1년을 넘기면서 규제에 발목이 잡힌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승차공유를 앞세워 시장에 진출한 카풀 서비스업체 풀러스는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극복하지 못해 최근 직원 70%를 해고하고 대표가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풀러스의 영업행위를 '자가용 불법 유상운송 알선'이라고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이해 당사자의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할 제대로 된 공청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풀러스에 앞서 럭시, 콜버스, 우버X 등 차량공유를 토대로 한 다른 서비스 사업자도 규제에 막혀 줄줄이 쓴맛을 봤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005380]는 동남아판 우버로 불린 '그랩'에 268억원을 투자했고 SK는 한술 더 떠 81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이해관계 조정과 규제개혁 등 적극적인 역할을 외면하고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에 한국이 신산업의 후발 주자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임 센터장은 "택시의 독점을 조금씩 깨고 대신 요금을 비롯한 택시 규제도 완화해주면 될 텐데 수년간 바뀐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면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등 다른 면에서도 진전이 있어야 한다. 원격 투약이나 의약품 배송 등 여러 가지가 (이해관계 집단의) 반대에 막혀 교착 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 뿌리 깊은 규제…"정부 내 입장 조율도 어렵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4년 전 회장에 취임한 뒤 38차례나 규제개혁 과제를 건의했지만, 상당수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규제개혁은 해묵은 난제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말 기재부 간부 회의에서 "그동안 혁신성장 추진에 있어 정부 내에서 일부 제약이 있었다"고 뼈있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내부 사정을 아는 당국자 사이에서는 정부가 이해 당사자의 충돌을 조정하기는커녕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고 정부 입장을 정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규제개혁은 국무조정실이 관리하고 혁신성장은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는 등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현안의 컨트롤 타워가 나뉜 것이 불협화음을 유발했다는 비판도 있다.
기획재정부는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규제개혁과 선도 산업 육성을 장려할 혁신성장본부를 발족했다.
김 부총리가 '규제가 만든 보상체계 때문에 형성된 기득권을 깨야 하며 이를 위해는 사회적 공론화가 중요하다'고 작년부터 역설한 점을 고려하면 뒤늦은 감이 있다.
김 부총리가 주재하는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 고형권 기재부 1차관의 혁신성장전략점검회의,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의 혁신성장 기업 간담회 등 복수의 회의가 지난 달 말부터 급조돼 운영 중이다.
이런 가운데 조직이나 회의체계만 새로 만드는 것은 옥상옥일 뿐 성과를 내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반면 '그렇게라도 쥐어짜야 성과가 나온다'는 시각도 있다.
◇ 규제혁신 회의 연기 '충격'…혁신성장 속도 낼까
문 대통령이 최근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전격적으로 연기하는 등 파열음을 내자 관계부처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셈이고 청와대 수석을 교체하는 등 인적 쇄신도 있었으니 이를 계기로 정부의 혁신산업 육성이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후임으로 거시 경제전문가이며 기획재정부 출신인 윤종원 수석이 임명된 것을 계기로 혁신성장 등 분야에서 청와대가 내각과 호흡을 잘 맞추게 될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로드맵을 작성하라고 제언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정부는 창조경제, 한류 등에서 혁신을 찾았는데 이제 중국으로 주력산업이 이전하고 있고 4차 산업이나 정보기술(IT) 쪽에서 혁신을 찾아야 한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접근하면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센터장은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이 무인화, 인공지능화, 자동화 등을 하면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일자리 보전 때문에 그런 것에 소극적인 느낌이 든다"면서 "하지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나올 수 있는 영역이니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주고 나중에 몇천 명을 고용할 새로운 기업이 크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 선거가 끝나서 정부가 기득권 폐지 등 이해 관계자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조정 작업을 단행하기에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인 만큼 과감한 규제 개혁안과 혁신성장 육성 방안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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