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인 동시에 '투사'…위안부 참상 알리기 적극 나서
시민단체 주관 시민사회장 치르기로…3일 발인, 추모제도
(통영=연합뉴스) 김선경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가 1일 별세했다. 향년 101세.
김 할머니는 22세가 되던 해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징용 모집자의 말에 속아 고향 통영에서 중국, 필리핀 등지로 끌려갔다.
일제 강점기 타국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은 김 할머니는 해방 직후에야 가까스로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피울음을 토할 수밖에 없는 끔찍한 기억에도 김 할머니는 주저앉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일본 정부로부터 공식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적극 활동하며 '투사'의 삶을 살았다.
199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한 김 할머니의 이런 행적은 2010년을 전후로 본격적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김 할머니는 2009년 11월 통영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직접 나서 통영시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시켜줄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2010년을 전후로 일본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해 본인이 겪은 참상을 수차례 증언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인간띠 잇기 행사가 열린 통영시 강구안 문화마당에 참석해 당시의 비극을 증언했다.
2012년에는 그간 생활비 등을 아껴 모은 2천만 원을 통영여고에 장학기금으로 내놨다.
경남도교육청은 이런 김 할머니의 뜻에 보답하듯 2013년 3월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증언록을 발간했다.
이후 이 증언록은 일본어와 영어, 중국어로도 번역돼 일본과 미국, 중국에도 발송됐다.
김 할머니는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해 펼치는 창작 뮤지컬 공연 등 각종 활동에도 직접 참석해 발언하는 등 힘을 보탰다.
2013년 말에는 가칭 '경남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에 써달라며 기금 2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이즈음 자택 생활을 뒤로하고 경남도립통영노인전문병원으로 입원했다.
몸져누운 처지에도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알리기 위한 김 할머니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김 할머니는 정부가 2015년 말 일본과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등 표현까지 써가며 맺은 위안부 한일 합의에 대해 분명히 반대했다.
김 할머니는 해당 합의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2016년 정대협이 주도한 손해배상 소송에 원고로 참여했다.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본인에게 지급한 1억원을 두고서는 지난해 보호자인 조카에게 되돌려주라고 거듭 요구했다.
당시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돌려줘라"는 의사를 수 차례 밝혔다.
그토록 원하던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김 할머니는 오는 3일 발인과 추모제를 거쳐 영면에 든다.
시민사회장으로 장례 절차를 주관하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통영·거제 시민모임' 관계자는 "할머니는 생전 '일본이 참말로 사죄만 한다쿠모 편히 눈을 감고 갈 수 있겄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겄다'고 피눈물로 외쳐왔다"며 "할머니의 외침을 기억하고 할머니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k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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