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 국회가 티셔츠에 적힌 'No 9'라는 글자가 평화헌법 규정인 '헌법 9조'를 연상시킨다며 방청을 막으려 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9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일본 참의원 사무국은 지난달 말 상임위원회인 후생노동위원회 회의에 방청을 하려는 여성 A(49)씨의 회의장 입장을 막았다.
'No 9'라는 문구가 평화헌법 조항인 '헌법9조'를 연상시켜 시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티셔츠 속 'No' 중 'o'는 작게 표현돼 숫자를 뜻하는 '넘버'로도, 반대를 뜻하는 '노'로도 읽힐 수 있다. A씨의 티셔츠에는 'No War(전쟁 반대)'라는 글씨도 적혀 있었다.
사무국 측은 A씨의 옷이 헌법9조를 옹호하는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며 '시위선전에 해당하는 옷의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청 내규를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여성은 글씨가 보이지 않도록 겉옷을 하나 더 입고 회의장에 들어갔고, 회의장 내부에서 다시 이 겉옷을 벗으려다 사무국 측의 제지를 당했다.
헌법 9조는 전쟁 포기(1항)와 전력(戰力) 보유 불가(2항)를 내용으로 한다. 일본을 전쟁 가능성에서 배제하는 '평화 헌법' 조항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우익들은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나라로 변신시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으며, 야권과 시민사회는 집회 등을 통해 이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A씨가 국회에서 겪은 일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참의원 측의 대응이 지나쳤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A씨가 트위터에 올린 관련 글은 6천700여건 리트윗됐고, 만화 '은하철도 999'의 로고나 채소의 일종인 '구조(九條·헌법의 '9조'와 발음이 유사) 대파'가 그려진 옷도 입으면 안되는 것이냐는 식의 비꼬는 글이 SNS에 잇따라 올라왔다.
도쿄신문은 일본 축구 대표팀의 '9'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은 채 방청할 수 있는지 참의원 사무국에 문의해 '공식 견해는 아니지만 유니폼은 제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는 일본 시민들의 반대에도 헌법 9조 개헌을 강행하려는 아베 정권의 자세와 권력에 대해 '손타쿠(忖度·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행동함)'하려는 참의원 사무국측의 모습이 투영됐다는 지적이 많다.
칼럼니스트인 오다지마 다카시 씨는 도쿄신문에 "'모두 채소를 먹자', '아이 러브 뉴욕(I love Newyork)'에도 주장이 담겨있으니 정치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며 "개헌 논의를 추진하려는 정권의 핵심을 자극할지를 판단 기준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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