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2005년 공동발굴→중단→재개 무산 등 우여곡절 재연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 북미 정상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우여곡절을 고려할 때 미군 유해송환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속단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이미 한국전 미군 유해 200구를 돌려받았다"고 다소 성급한 주장을 펼친데 이어 미국이 북측에 유해 운반용 상자를 전달해 송환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기류가 조성되더니 돌연 진전이 멈춘 상황에서 나온 보도다.
미국 국방부는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 병력이 총 7천697명으로, 이 가운데 5천300여 구가 북한 땅에 묻혀 있다고 추산한다.
미국은 지난 1982년부터 북한에서 발굴된 미군 유해 629구를 송환받았으며 발굴·송환 비용으로 북한에 총 2천200만 달러를 보냈다. 특히 1996∼2005년에는 양국이 합동조사단을 꾸려 33차례 공동 발굴에 나서 229구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이후 북핵에 가로막히면서 추가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12일 역사적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 신원이 이미 확인된 미군 전쟁포로와 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유해 수습을 약속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며칠내 200구, 가까운 장래에 더 많은 유해가 송환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WP는 과거 북미간 유해발굴 및 송환을 둘러싼 논란을 거론하면서 "북한의 협력이 오락가락했던 것 등을 고려하면 그 과정이 위기로 가득찰 수 있다"며 "또한 성공적인 송환이 이뤄지더라도 몇년이 걸리는 힘든 신원확인 과정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사령부가 건네받게 될 미군 유해는 먼저 오산 공군기지로 이송돼 미군임을 확인하는 1차 분류작업을 거친 뒤 하와이의 히컴 공군기지로 옮겨진다. 여기서 DNA 테스트 등을 통한 최종 신원확인을 거쳐 본국으로 이송된다고 한다. 북한은 과거 동물 뼈를 섞어 보낸 것으로 알려졌던 터라 신원확인 작업 자체가 매우 지난한 과정이 될 전망이다.
특히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이 유해를 미끼로 사용한다"며 "일종의 밑밥으로 유해를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한 북미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따내기 위한 방편으로 미군 유해 발굴과 송환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워싱턴 조야에서는 과거 북미간 진행했던 유해 발굴과 송환 작업을 상기하면 이러한 우려를 단지 기우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기류가 있다.
원래 북미는 1996∼2005년 함경남도 장진호와 평안북도 운산에서 공동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작업은 2005년 중단됐다. 2011년 양측의 재개 합의가 발표됐다. 하지만 2012년 4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 측 발굴팀의 안전보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며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발굴과 송환 작업이 지지부진한 사이 2007년 빌 리처드슨 당시 멕시코 주지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방북해 미군 유해 7구를 가져왔다. 당시 북한은 유해송환 프로그램을 재개하려 했지만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이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또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2016년 자신이 운영하는 '리처드슨센터'의 부소장인 믹키 버그먼 등이 이끄는 팀을 방북시켜 억류된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함께 미군 유해를 데려오는 작업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북한은 당시 200구의 유해를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당시 행정부는 북한의 제안이 핵 개발에 대한 압박을 비켜가기 위한 일종의 미끼로 판단하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유해 발굴과 송환에 따른 북한의 비용 요구도 미국 측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인이라고 한다. 러셀 전 차관보는 "북한은 무한한 추가비용을 요구하며 애매한 이름의 비용이 청구된다"고 주장했다. 이 자금이 핵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비판도 미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라고 WP는 지적했다.
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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