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힙합 정규 앨범 '제미나이2' 발표
타이거JK "윤미래는 아까운 인재"…힙합 위상 변화 신기해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새로운 시작, 워킹맘의 객기 (중략) 오뉴월의 서리 내린, 한 맺힌 워킹맘의 객기.'
'힙합 여제' 윤미래(37)는 정규 앨범 '제미나이2'(Gemini2) 첫곡 '랩 퀸'(Rap Queen)부터 스웨그(허세) 넘치게 '워킹맘'이란 정체성을 드러낸다.
1997년 혼성그룹 업타운과 1999년 여성듀오 타샤니로 활동하며 까무잡잡한 피부의 앳된 얼굴로 수려한 랩을 쏟아낸 그가 어느덧 아들 하나를 둔 엄마 래퍼가 돼 자기 이야기를 당당하게 풀어냈다.
윤미래는 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제미나이2' 음악감상회에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예계에선 나이가 들수록 인기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일부러 어려 보이기 위해 나이를 숨기는 것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대중과 친해질 수 있고 사람들이 제 음악을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솔직한 게 답인 것 같아서 (아내,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앨범에선 현실밀착형 음악이 더 있다.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개같애'는 결혼한 부부라면 한층 공감할 일상 이야기를 재미있게 표현한 R&B 힙합 트랙이다.
'오빤 개 같애. 돈도 많이 벌어준다 했지만 맨날 술만 먹고 X랄'이란 랩 가사에 남편인 래퍼 타이거JK가 피처링을 더해 마치 실화처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윤미래는 "그게 오빠(남편)인지 아닌지는 말 안 하겠다"고 웃으며 "주위 커플 얘기를 듣고 생각하며 가사를 썼다"고 소개했다.
당초 주위에선 굳이 엄마임을 드러내고 제목도 불편한 이 곡을 넣어야 하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윤미래는 "엄마이지만 섹시할 수도 있고,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노래하고 싶다. 숨기고 다듬어진 것만 보여주는 게 유치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앨범 프로듀서 타이거JK는 "둘 중 하나가 욕을 먹을 수 있지만 재미있게 만들었다"며 "그간 인터뷰를 하며 '부부싸움을 할 때 랩 배틀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거기서 착안해 작업했다. 미래가 그간 '삶의 향기', '검은 행복', '메모리즈' 등 인생의 아픔과 고독을 얘기한 노래가 많아서 이번엔 폼 잡지 말고 현실적이지만 재미있는 음악을 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개같애'를 '애같애'로 바꿀까 고민했지만 고쳐서 나가면 가식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쿠키'란 곡에선 아들에 대한 윤미래의 애틋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 곡에는 작업할 때 함께 있던 조단의 음성이 담겼다.
윤미래는 "조단의 별명이 쿠키"라며 "달콤하고 가끔 깨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바빠서 시간을 같이 못 보내 미안한데, 조단이 커서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곡을 통해 알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조단이 태어났을 때 '랩신'이 태어난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고 하자 타이거JK는 "흥미는 보이는데 재능은 없다"고, 윤미래는 "그래도 리듬감은 좋다"고 다른 의견을 내 웃음을 자아냈다.
이번 앨범은 16년 만에 나오는 윤미래의 힙합 정규 앨범이다. 2002년 발매돼 가요계 명반으로 꼽히는 '제미나이' 두 번째 시리즈로 힙합을 토대로 네오 솔, R&B 등 다양한 블랙뮤직 장르 12곡이 실렸다.
타이거JK는 16년이란 시간에 대해 "미래가 육아를 열심히 했고 우리가 올드스쿨이어서 요즘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싱글로 활동했지만 말하고 싶은 게 표현이 잘 안 돼 정규 앨범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래퍼와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모두 갖춘 윤미래는 그간 드라마 OST와 각종 음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래퍼로서의 면모를 많이 보여주지 않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파워풀한 랩 플로우(흐름)부터 깊이 있는 솔 보컬까지 아울렀다.
'가위바위보' 뮤직비디오에선 트레이닝복을 입고서 카리스마 있는 제스처로 랩을 하고, 섹시한 분위기의 '피치'에선 기교를 절제하고 느낌을 살려 노래했다. 또 다른 타이틀곡 '유 & 미'(You & Me)는 미니멀한 편곡에 윤미래의 노련한 보컬이 돋보인다.
윤미래는 "집에서 R&B, 솔을 자주 듣지만 무대에선 역시 힙합"이라며 "그건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다. 그래서 앨범도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서 힙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웃었다.
앨범에는 영어 랩으로 된 '샴페인'을 비롯해 '유 & 미'와 '피치'가 영어 버전으로도 실렸다
타이거JK는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문을 열지 않았나"라며 "미래는 아까운 인재다. 그래서 영어곡을 일부러 삽입했다. 한국에도 이런 아티스트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1990년대 힙합이 비주류일 때부터 시장을 개척한 힙합 1세대다. 힙합이 젊은층 큰 사랑을 받으며 위상이 달라진 데 대해 "신기하고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윤미래는 "예전엔 힙합이라고 하면 안 좋게 보시고 욕도 했다"며 "요즘에는 행사장에 가면 힙합 아티스트가 몇 명은 꼭 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또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도 "힙합이 인기가 없었을 때 래퍼들은 '랩 구다리'라고 무시를 당했다"며 "무대 시간도 적고 대기실도 안 줬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길이었지만 지난 21년간 변하지 않은 건 힙합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무대에서 랩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편하다"며 "공연할 때 랩을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것 때문에 음악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천국 같다. 그래서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윤미래는 14∼1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윤미래'(YOONMIRAE)란 타이틀로 콘서트를 연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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