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하나" 고집하다가 외부에서 문제 되자 복수정답 인정
(서울=연합뉴스) 오예진 기자 = 논란이 된 내신 시험 문항에 대해 학교 측이 복수정답 인정을 거부했다가 연합뉴스가 취재에 들어가자 뒤늦게 번복한 사례도 있었다.
서울 S고교가 올해 4월 말 치른 2018학년도 1학기 중간고사 중, 2학년 자연계열 학생 190명이 치른 영어시험의 서술형 주관식 문항에서 복수정답 논란이 일었다.
이 문항의 지문은 수집(collecting)을 여가활동으로 즐길 때 취미를 넘어선 집착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의해야 할 점을 서술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 취미(hobby)를 일·친구·가족보다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집착(obsession)으로 변질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 취미는 열정(passion)이 인생의 다른 중요한 것들과 균형을 이룰 때 커다란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등이다.
위의 사진처럼 빈칸을 채워야 할 세 개의 문장 중 두 번째(밑줄 부분)는 '당신의 (E)가 (F)가 되도록 하지 말라'[Don't let your (E) become a(n) (F) ]이다.
학교에서는 당초 '열정이 집착이 되도록 하지 말라'는 의미의 'Don't let your (passion) become an (obsession)'을 유일한 정답으로 제시했다.
이에 따라 (E)에는 'passion'(열정)만을 정답으로 인정했고 'hobby'(취미)와 같은 비슷한 맥락의 단어는 오답으로 처리했다.
'열정이 집착이 되도록 하지 말라'는 답이 되지만 '취미가 집착이 되도록 하지말라'는 틀린 답이라는 의미다.
이에 대해 학교 측에서는 애초 "지문 전체를 다 읽어보면 답이 'passion'이라는 것을 안다"면서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선생님들이 다 설명해줘서 학생들도 이해하고 (문제가 없다는) 서명까지 했다"고 밝혔다.
"선생님의 권위만 앞세워 학생들의 정당한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학원가 관계자의 설명과는 전혀 달랐다.
S 고교 측은 이와 관련해 5월 31일 담당 영어 교사 4명이 참석하는 1차 교과협의회를 열어 검토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청을 통한 추가 취재가 이어지자 나흘 만인 지난달 4일 'hobby'와 'collecting'까지 정답으로 인정한다며 입장을 뒤집었다.
S 고교 측은 "1차 협의 결과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학생 입장에서 해당 문장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라는 교육청 권고에 따라 'hobby(hobbies)'나 'collecting'도 유사정답으로 인정해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이 결정을 위해 영어과 교사 전원과 교감 등 18명의 학교 관계자가 참석한 2차 교과협의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입장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정답은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교육청의 권고를 따랐"고 "출제문제만을 보면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것이 학생들을 생각하는 포괄적인 마음으로 생각됐다"고 말했다.
번복 전의 입장이 옳다고 보든, 번복 후의 입장이 옳다고 보든, 시험문제의 정답 인정이 학문적 근거나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 상위 기관의 권고 등 외부 요소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인정한 셈이다.
oh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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