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영찬 지적…"계급 불평등 보이지 않게 해"
평론집 '문학이 하는 일'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담은 메시지가 정치성의 한계를 보인다고 지적하는 문학계 비평이 나와 눈길을 끈다.
문학평론가 김영찬(계명대 국문과 교수)은 최근 펴낸 평론집 '문학이 하는 일'(창비) 중 '비평은 없다-'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글에서 문학계의 기존 평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모두 '82년생 김지영'의 메시지 자체가 갖는 정치성의 한계를 묻지 않는다. 아마도 그 메시지가 정치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는 전제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런데 과연 그런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여성으로서 겪은 누적된 좌절과 '독박육아'의 힘겨움에 시달리다 결정적으로 '맘충'이라는 혐오 발언에 충격받아 정신질환에 걸린다는 이 소설의 설정이 결국은 구조적 차원의 문제이자 공적인 실천의 문제를 개인심리의 차원으로 용해해버리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보이지 않던 여성의 현실을 가시화한 이 소설의 재현의 논리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며 또 다른 문제를 짚었다.
"이 소설이 보고하는 '82년생 김지영'의 삶은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해 괜찮은 직장에서 (경력 중단을 겪긴 해도) 전문적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쌓고 아이를 출산할 한줌의 여유도 있는 그런 삶이다. 겉보기에 평탄해 보이는 그런 여성의 삶마저도 여성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현실에 상처받고 좌절하고 결국은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의 부당함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정치적 올바름의 노선을 충실히 따라간다. 그러나 보이지 않던 것을 가시화하는 그런 재현의 논리는 그럼으로써 거꾸로 또 다른 현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는 "사실 공통감각을 분유(分有)하는 동질적인 여성공동체란 하나의 허구다. 그 안에는 계급 및 계층의 위계와 불평등과 적대가 겹겹이 존재하고 '우리의 김지영'에도 속하지 못한 (그럴 가능성도 없는) 경계 밖의 수많은 김지영'들'이 존재한다. '82년생 김지영'의 현실과 감각을 여성의 이름으로 보편화하는 순간 저들 '김지영 이하의 김지영'은 가시성의 장에서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또 이 소설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음에도 정작 문학계에서는 저평가된 사실을 지적하며 문학계의 성찰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업계' 종사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문학적 완성도와 완미함이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으로 무력해지는 지점에 이 소설이 존재한다"며 "이는 오히려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겪는 삶의 정동을 문학의 언어로 가시화함으로써 한국문학의 감성체계 재편을 촉구하는 문학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차별의 현실에 대한 동시대 여성들의 공감대가 문학적 재현체계 속에 자기 삶의 절박함을 등재시키려는 욕구와 만나 발생한 문학적 현상"이라며 "이를 문학 외적인 사회현상이나 신드롬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이래 꾸준히 글을 발표하며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세 번째 평론집인 이번 책에서는 한국 장편소설의 현재와 비평의 문제, 한국문학이 처한 현실, 그간의 성과 등을 두루 다뤘다.
'고통과 문학, 고통의 문학' 장에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와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의 성취를 거론하며 그것을 가능케 한, 고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작가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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