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대로 유치경쟁 치열…美와 정치·외교관계,방위산업 기여도 등 변수 복잡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독일이 노후화된 주력 전투기 토네이도의 대체 모델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 후보에 오른 것은 독일·영국·이탈리아 컨소시엄의 유로파이터와 미국산 전투기(F-35A, F-15E, F/A-18E/F)다.
독일과 유럽의 항공방위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유로파이터를 선택해야 하지만 미국산 전투기를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독일의 딜레마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정치·외교적 관계는 물론 미국이 독일에 제공하는 '핵우산'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이 수십억 유로(수조 원)로 예상되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처럼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2025년부터 퇴역하는 토네이도 전투기의 대체 모델을 올해 결정할 계획이다.
프랑스의 방위분석가인 프랑수아 헤이스부르는 "독일이 미국과 다른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방위 관계는 물론 핵 임무와 항공우주산업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갈림길에 섰다"고 말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독일을 상대로 방위비 지출 증대와 대미 무역 적자 축소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브뤼셀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독일은 부유한 나라로 방위비 지출을 즉각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외교관계위원회의 크리스티안 묄링 조사연구소 부소장은 미·독 관계가 힘든 시기를 맞은 상황에서 미국산 전투기 구매가 호의를 베푸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징적 조치가 될 것"이라며 "독일이 '봐라! 우리가 미국 제품을 산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클라우디아 마요르 방위분석가는 "미국산 구매는 미국의 안보 보장 제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며 "이는 양국의 동맹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산 전투기 구매에는 단점도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헌신'에 의문이 커지는 상황에서 독일의 대미 의존도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독일을 비롯한 유럽 방위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독일 국방부 대변인은 유로파이터를 주문하면 독일과 유럽이 군사 항공의 전문기술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유로파이터 구매에도 걸림돌이 있다.
이른바 '핵 공유'로 알려진 나토의 핵 억지력 독트린이다. 이는 핵이 없는 나토 회원국이 자국에 배치된 미국 핵탄두를 비행기에 탑재하는 것이다.
독일 공군 33전술비행단의 토네이도 전투기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토네이도 전투기와 달리 유로파이터는 핵무기 탑재에 대한 미국의 인증을 받지 못했다. 미국이 경쟁 전투기에 핵무기 탑재를 인증해줄지도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F-35 기종 제작업체인 미국 록히드와 유로파이터 생산 컨소시엄업체인 에어버스는 독일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은 유로파이터를 선호한다고 밝혔지만 독일 공군은 군사적, 정치적 이유를 들어 F-35A가 더 낫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내부적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독일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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