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보다 남성혐오·여성우월주의에 가까워…용어·행동양식 '여혐 미러링'
성별 확인 없이 가입 허용…일부 게시판은 인증하고 등급 올라야 이용 가능
(서울=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지난 10일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WOMAD)'에 성체에 낙서하고 불태운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게시물을 올린 워마드 회원은 "천주교는 여자는 사제도 못 하게 하고 낙태죄 폐지 절대 안 된다고 한다"면서 "(성체는) 그냥 밀가루를 구워서 만든 떡"이라고 적었다.
가톨릭에서는 성체를 현존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며, 미사 때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며 신자들에게 나눠준다. 이에 따라 성체 훼손은 곧 신앙의 대상을 모독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로 교회법상 매우 심각하게 다룬다.
워마드는 2015년 말 여성주의 표방 사이트 '메갈리아'에서 독립해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하다가, 작년 초 현재 운영되고 있는 새 사이트(https://womad.life)를 열었다.
워마드라는 이름도 메갈리아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여성을 뜻하는 영어 Woman과 유목민을 지칭하는 Nomad를 합성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 '페미니즘 표방?'…남성혐오·여성우월주의 두드러져
일부 언론이나 온라인 게시물은 워마드를 페미니즘 사이트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워마드는 공식적으로 여권 신장과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즘을 표방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 회원은 오히려 남성혐오와 여성우월주의라는 정체성을 공유한다.
한 회원은 '워마드는 페미니즘 사이트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판에 올리면서 "웜(워마드의 줄임말)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혐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이 회원은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포츠로 남혐한다고 결론이 났다"면서 "여권 상승이 목표인 래디컬 페미니즘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전복시켜 여성들이 지배하겠다는 여성우월주의"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회원도 '워마드가 혜화 시위랑 페미니즘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게시글을 통해 "워마드는 여남평등에 관심이 없으며 극단적 남성말살주의"라고 주장했다.
여성학자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워마드는 익명으로 운영되는 산발적이고 유동적인 사이트이기 때문에 단일한 집단으로 명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회원 중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분들도 있어 어떠한 계열의 페미니스트라고 섣불리 진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회원 대부분이 여성?…가입 시 성별 확인 절차 없어
워마드가 대체로 남성혐오·여성우월주의를 앞세우긴 하지만, 이용자 전부가 여성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현재 워마드 사이트에 가입할 때 성별을 확인하는 절차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외 개인정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이디와 닉네임, 비밀번호를 적고 회원가입을 마치면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일각에서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여성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워마드에 가입한 뒤 일부러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남자화장실 몰래카메라 사진'과 같이 민감한 내용이 모여있는 '데스노트' 게시판의 경우 여성임을 인증하고, 등급이 상향 조정된 회원만 열람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
▲ 행동 방식은?…'미러링'으로 신조어 제조해 '반격'
워마드 회원의 활동 방식은 '미러링(mirroring)'으로 요약할 수 있다. 미러링은 타인의 행동을 거울(mirror)에 비춘 것처럼 똑같이 따라 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남성혐오를 표출하기 위해 새로 만든 용어 중에는 남성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에서 유래된 것이 많다.
예컨대, 워마드에서는 성형을 많이 한 사람을 지칭하는 은어인 '성괴(성형 괴물)'가 '성매매 괴물'을 뜻한다.
나이 든 여성을 지칭하는 '상폐녀(상장폐지녀)'에 맞서 '상폐남'이라는 용어도 만들어냈다. 또 '상남자'대신 '상여자'라는 표현으로 여성의 당당함과 지성을 칭찬한다.
워마드 회원들이 인사를 주고받을 때 쓰는 '하용가'는 남성이 채팅에서 만난 어린 여성에게 쪽지를 보낼 때 흔히 사용하는 "하이 용돈 만남 가능?"에서 유래했다.
최근 혜화역 시위에서 논란이 된 '재기해'라는 표현도 널리 사용되는데, 2013년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해 사망한 고(故)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을 조롱하는 말이다.
이 밖에도 여성이나 남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용어와 결합해 만든 용어도 많다.
워마드에 이른바 '남성 몰카(몰래카메라)'와 같은 게시물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것도 일베 등 극단주의 사이트와 닮았다.
이 사이트에는 최근 홍익대 회화과 실기 수업에서 촬영된 남성 누드모델 사진에 이어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와 고려대 남자화장실에서 몰래 찍은 것으로 의심되는 동영상과 사진이 올라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워마드의 영향력 커진 배경은?…강남역 여성혐오 사건이 도화선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은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메갈리아는 그 이전에 등장한 온라인 커뮤니티지만 이 사건을 기점으로 영향력이 커졌고,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모이면서 워마드가 분리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즈음 여성 회원이 많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페미니즘이나 여성 혐오에 대한 토론이 치열하게 이뤄졌다.
윤김지영 교수는 "한 때 남성 역차별 담론이 등장했는데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여전히 여성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간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10대,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빠르게 퍼졌다"고 설명했다.
윤김 교수는 "페미니즘을 표방하지 않는 여성 사이트에서도 거의 매일 같이 이러한 주제를 놓고 토론이 이뤄졌다"면서 "그 뒤에 페미니즘 언어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워마드 같은 방식의 사이트가 등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87년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정착했다면, 지금 여성들은 삶의 방식으로 일상화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성체 훼손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지나치게 과격한 방식은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수연 박사는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혐오의 총량만 키울 뿐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라며 "현재 여성과 남성 간 신뢰가 사라지고 갈등으로 치달아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장덕진 교수도 "여성들이 미러링으로 대응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본질적인 이야기가 사라지고 혐오를 키울 수밖에 없다"면서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gogog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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