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일반적으로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다. 태어나는 순간 운명적으로 구성원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가족은 운명 공동체라고 할 수 잇다.
흔히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듯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은 그 어떤 공동체보다 살갑고 끈끈한 유대감을 보인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피를 나누고도 남보다 못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한 결속력을 보이는 공동체도 있다.
일본 영화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원제: 万引き家族)은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짜 가족의 이야기다.
올해 제71회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1997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우나기' 이후 21년 만에 일본 영화계에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원제는 '만비키(도둑) 가족'이지만 다소 자극적이라고 판단했는지 '어느 가족'이라는 무난한 제목이 붙었다.
영화의 주 무대는 도쿄의 다 쓰러져 가는 목조 주택이다. 주변은 모두 개발됐지만 이 집만 개발을 거부하듯 홀로 남겨졌다. 이 집에 할머니 '하츠에'와 아빠 '오사무', 엄마 '노부요', 할머니를 따르는 '아키', 아들 '쇼타'가 함께 살고 있다.
하츠에는 연금을 받고 오사무는 공사장 일용직으로,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일하지만 이 가족의 주요 수입원은 좀도둑질이다. 대형마트든 동네 구멍가게든 가리지 않고 좀도둑질로 생필품을 조달한다.
어느 겨울날 오사무는 쇼타와 함께 대형마트에서 도둑질을 하고 돌아오던 중 길에서 떨고 있는 소녀 '유리'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온다.
다음날 오사무와 노부요는 유리를 부모에게 데려주려고 하지만 유리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망설이게 된다. 유리 역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자 이들은 결국 유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가난하지만 화목하게 사는 가족 사이에 학대받은 소녀가 끼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오사무 가족 역시 한 방울도 피가 섞이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외롭고 상처받은 사람들끼리 작은 집에 모여 진짜 가족처럼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들의 일상을 비추며 담담하게 흘러가던 이야기는 쇼타가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 붙잡히면서 변곡점을 맞이한다. 가족에게도 감추고 싶었던 속사정이 하나씩 드러나고 버겁기만 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이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고레에다 감독은 진짜 가족보다도 서로를 위하며 화목하게 살았지만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흩어져야 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오사무 역과 하츠에 역은 고레에다 감독의 '분신'이라고 불리는 릴리 프랭키(본명 나카자와 마사야)와 키키 키린(본명 우치다 케이코)이 연기했다.
릴리 프랭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배우이면서 '도쿄 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통해 2006년 일본 서점 대상을 받은 작가이기도 하다.
키키 키린은 일본의 '국민 엄마' 또는 '국민 할머니'로 불리는 여배우로 50년 연기 경력에서 나오는 노련함과 풍부한 감성을 통해 작품에 무게감을 더했다.
노부요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는 고레에다 감독으로부터 '또래 여배우 중 최고의 연기력'이라는 극찬을 받은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도 겉으로는 무심한듯하면서도 속 깊은 엄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후반부 경찰로부터 취조당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눈물 연기는 격하지 않지만 조용하고 힘있게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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