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여부 판단 장기화 불가피…금감원 새 감리·조치안 마련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김아람 기자 =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감리조치안을 두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조치안 수정 요구에 '불가' 입장을 고수하자 증선위는 '판단보류'로 응수해 결국 '반쪽짜리' 결론이 나오는 사태가 빚어졌다.
증선위는 금감원에 핵심 지적사항을 다시 감리할 것을 요청하기로 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여부는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증선위는 12일 임시회의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공시누락에 대해서만 제재를 의결하고 감리조치안의 핵심인 지배력 판단 변경 부분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지 않았다.
금감원의 감리조치안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 변경하는 과정에서 고의 분식회계가 있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난 2011년 설립 이후 적자를 계속 냈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직전인 2015년 1조9천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를 '장부가액'에서 '공정가액'(시장가)으로 바꾼 데 따른 것이며 금감원 감리조치안은 애초 이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증선위는 지난달 20일 3차 심의 후 종합적인 판단을 위해 2015년 이전인 2012~2014년 회계처리 변경도 함께 검토할 것을 금감원에 요청했다. 기존 감리조치안으로는 증선위 심의를 할 수 없으니 조치안을 수정하라는 요구였다.
금감원은 증선위 요구에 고심을 거듭했지만 '원안 고수'로 입장을 정리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9일 '금융감독혁신 과제' 발표 브리핑에서 "원안 고수가 우리 생각"이라고 수정 불가 방침에 못을 박았다.
증선위는 금감원 고위층과 만나 설득 작업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협의는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증선위는 금감원 감리조치안 원안을 두고 의결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증선위는 '일부 심의'로 결론을 내렸다.
증선위원 간 의견이 일치하는 바이오젠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 공시누락 사항에 대해 '고의성'을 인정해 담당임원 해임권고, 감사인 지정 및 검찰 고발 등의 제재를 의결한 것이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지배력 변경 부분은 판단을 보류하고 오히려 금감원에 재감리와 새 조치안의 마련을 주문했다.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먼저 결론을 내리고 의견이 엇갈리는 핵심 쟁점은 좀 더 시간을 두고 판단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건은 이날 임시회의가 벌써 5번째 논의로 증선위 역사상 가장 많은 회의 시간이 투입됐다.
증선위는 판단보류의 이유로 금감원의 조치안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증선위는 "핵심적인 혐의에 대한 금감원 판단이 유보돼 조치안 내용이 행정처분의 명확성과 구체성 측면에서 미흡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했다고 지적하면서 변경 전후에는 둘 중 어느 회계처리가 맞는지 제시하지 않았다는 게 증선위 설명이다.
증선위는 "행정처분을 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되는 위법행위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특정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행정처분은 위법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증선위의 심의 결과 발표 직후 "행정소송 등 가능한 법적 구제수단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증선위는 직접 사실관계를 조사해 조치안을 수정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법령에 저촉될 우려가 있어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YNAPHOTO path='PYH2018050705800001300_P2.jpg' id='PYH20180507058000013' title=' ' caption='인천시 연수구 삼성 바이오로직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결국 증선위는 지배력 변경에 대한 판단을 보류하고 금감원에 다시 감리를 요청하기로 하면서 이번 사안은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은 "처분 결정을 하지 못한 사항에 대해서는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추후에 명확하고 구체적인 처분을 내리기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증선위 요청으로 다시 감리를 벌여 지배력 판단 변경에 대한 새로운 감리조치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경우 다시 조치사전통지 절차부터 밟아야 한다.
당장 오는 18일 정례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금감원이 새 조치안을 마련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향후 금감원이 새 조치안을 마련해 조치사전통지 절차를 밟고 증선위에 보고하면 이번 사안을 둘러싼 증선위 절차는 다시 시작된다.
kak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