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기획' 정황 더 짙어진 북한 식당종업원 집단 탈북

입력 2018-07-15 17:44  

[연합시론] '기획' 정황 더 짙어진 북한 식당종업원 집단 탈북

(서울=연합뉴스) 2년여 전 중국 저장성 소재 북한식당의 종업원들이 한국으로 집단 탈출한 것은 우리 정보기관의 기획에 의한 것이란 정황이 한층 짙어졌다. 현지 류경식당 지배인으로 일하다 12명의 여종업원을 이끌고 한국에 온 허강일 씨는 15일 자신들의 한국행은 국가정보원의 회유와 협박에 따른 것이라고 털어놨다. 자신을 국정원의 협력자였다고 밝힌 허 씨는 당시 국정원 측이 "종업원을 데리고 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해주고, 동남아에서 국정원의 아지트로 쓸 수 있는 식당을 차려줄 테니 거기서 종업원들과 같이 식당을 운영하라고 꼬셨다"고 말했다. 자신이 섣불리 결정을 못 하고 망설이자 국정원이 "그동안 국정원에 협력했던 사실을 북한 대사관에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결국 한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허 씨의 발언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 국정원에 의한 북한식당 종업원 '기획 탈북' 의혹을 제기한 그간의 언론 보도나 시민단체 주장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특히 자신과 함께 탈출한 여종업원 12명 중 대다수가 동남아에 가 식당영업을 하는 줄 알고 따라왔다 비행기에 오르고서야 한국행을 알게 됐다고 말한 것은, 여종업원들이 자의로 탈북한 것이 아니라는 일각의 의혹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최근 방한해 여종업원 몇 명을 직접 면담한 토마스 오헤아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이 "여종업원 중 일부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밝힌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여러 증언과 정황을 종합하면 북한 종업원들의 한국행은 국정원이 2016년 4·13 총선을 코앞에 두고 벌인 '기획 탈북'이란 의혹이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당시 정권과 정보기관이 정치적 목적으로 '북풍 공작'을 자행한 것이 사실로 판명되면 파문이 클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나 있을 법한 '북풍 몰이'를 21세기 민주정부에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시대착오적 정치공작이다. 현 정부가 사건의 진상을 신속·정확하게 규명할 필요성이 커졌다. 자칫 방치하다가는 남북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유엔 차원의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병호 전 국정원장과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 국정원 관계자 등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가 사건을 맡아 초기 수사를 진행 중이다. 통일부는 이런데도 "탈북 여종업원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입국한 것으로 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안의 민감성과 남북관계로 볼 때 정부의 난처한 입장은 이해할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의혹을 마냥 덮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검찰이 수사를 신속히 진행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하는 이유다. 수사에서 범법행위가 드러나면 관련자들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종업원들의 북한 송환 등 신병 처리는 그들의 자유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지혜롭게 해결할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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