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고·특목고·자사고·공립중 등 전국 곳곳
적발 어려워 '빙산의 일각'…학생들 문제제기 후에야 드러나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오예진 김예나 기자 = 최근 일선 중고교에서 내신 시험 문제가 유출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서울의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와 공립중학교에 이어 광주의 사립고와 부산의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에서도 내신 시험지 유출 사건이 밝혀졌다.
수법도 다양하다. 학생이 교무실과 연구실에 침입해 문제를 빼내는가 하면, 교사나 교직원이 학부모나 학원 강사와 짜고 문제를 빼돌리기도 했다.
교사가 자신이 맡은 수준별 학급 학생의 성적을 높이려고 문제를 미리 가르쳐 준 사례도 나왔다.
이런 사건들은 대부분 동료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야 교육 당국에 알려지게 된다. 적발 자체가 어려운만큼,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교사·직원과 학부모·학원이 담합
광주 A고에서는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은 학부모가 학교 행정실장을 통해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를 빼돌린 사실이 드러났다. 학교 내부자와 외부자가 공모한 대표적 사례다.
학생의 어머니인 의사 B(52)씨는 올해 3월부터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으며 친해진 학교 행정실장에게 시험지 유출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아들을 의대에 보내고 싶었으나 아들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런 일을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17일 A고와 학부모 B씨와 행정실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했으며, 금품 거래여부와 추가 관련자 유무 등을 조사중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C 외국어고에서는 교사가 학원장과 짜고 시험문제를 빼낸 사실이 드러났다.
이 학교 출신인 학원장 조모(32)씨가 친하게 지내던 교사 황모(61)씨와 짜고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영어시험 문제를 미리 받아 학원 수강생들에게 나눠주고 문제풀이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출된 문제 32개 중 27개가 시험에 거의 똑같이 출제됐다.
◇"하급반 안쓰러워서"…학교 '윤리 불감증'도
지난 4일 기말고사를 치른 서울 강남구의 D 중학교는 수학교사가 3학년 하급반 학생들에게 6개 안팎의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 준 사실이 드러나 재시험을 치렀다.
서울시교육청과 해당 학교 관계자는 "학생들 성적이 떨어지는 '하'반이어서 (담당 교사가) 안타까운 마음에 독려 차원에서 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E중학교에서도 지난 5월 영어교사가 2학년 중간고사 문제를 유출해 적발됐다.
해당 교사는 2학년 하급반 학생 32명이 듣는 영어 수업에서 2개 문제를 여러 차례 강조해 가르치는 방식으로 미리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전북 전주의 F여고에서는 한 수학 교사가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일주일 가량 앞두고 시험문제 일부를 특정 반에만 알려 준 사실이 드러나 재시험이 치러졌다.
해당 교사는 공동으로 출제한 시험문제에 자신이 가르치지 않은 내용이 들어있자, 전체 10개 학급 중 자신이 담당한 4개 반에만 수업 시간에 비슷한 예를 들어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 교무실·연구실에 학생들이 침입해 문제 빼돌려
학생들에 의한 유출도 '철없는 행동'이라고만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계획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부산의 G 특수목적고에서는 이번 기말고사에서 3학년 학생 2명이 방과 후 교수 연구실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몰래 들어가 문제를 빼냈다.
이들은 서랍에 있던 두 과목의 시험지를 휴대전화로 촬영했으며, 이를 학교 컴퓨터로 자신의 비공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자사고인 H고교에서도 2학년 학생 2명이 학교에 잠입해 시험문제를 몰래 촬영한 사건이 드러났다.
이들은 새벽을 틈타 교무실 창문을 타고 침입한 후, 문학 과목 시험지와 서술형 문제 답안지 등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학교 측은 해당 과목 시험 결과를 무효화하고 재시험을 치렀으며, 학생들의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8월는 전북의 I고교 재학생 4명이 영어, 한국지리 등 4개 과목의 시험지를 훔쳤다가 발각됐다. 이들은 학교가 개축공사를 하며 강당을 임시 교무실로 사용하는 점을 노리고 새벽에 몰래 들어가 문제를 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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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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