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러시아 최대 외국인투자자, 지금은 반푸틴 인권운동가
(서울=연합뉴스) 이동경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미국 측에 특정인에 대한 조사를 허락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러시아군 정보요원 12명에 대한 입국 조사를 허용하겠다면서 윌리엄 F.브라우더(54)에 대한 러시아 사법기관의 조사를 요구했다.
이는 미국의 로버트 뮬러 특검이 대선 당시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 캠프와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등을 해킹한 혐의 등으로 기소한 러시아군 정보요원을 미국이 조사하는 대신 브라우더의 수사를 요청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브라우더가 '러시아 영토 내에서 불법적인 행동을 한 혐의'가 있다면서 브라우더의 관계인들이 러시아에서 불법으로 유출한 4억달러(약 4천511억원) 규모의 자금을 대선 당시 힐러리 캠프에 제공한 의혹에 관해 거론했다.
미국 출신인 브라우더는 1936년과 1940년 미국 공산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던 얼 브라우더의 손자다.
그는 러시아 투자에 성공해 한때 수십억달러를 굴리는 헤지펀드인 허미티지 캐피털을 운영하면서 러시아 최대 외국인투자자로서 입지를 굳혀 푸틴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2011년 친구이자 펀드의 자문 변호사인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모스크바의 교도소에서 사망하자 러시아 수사당국의 고문이 사인이라고 비난, 이후 반(反)푸틴, 인권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 러시아에서 추방당한뒤 영국 시민권을 얻어 런던에서 활동 중인 브라우더는 지난 3월 '적색수배령'이라는 책을 발간, 푸틴 대통령을 범죄 기업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의 추방과 마그니츠키 죽음의 배후에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브라우더의 사업 관계인들은 러시아에서 15억달러를 벌었지만, 미국은 물론 러시아에서 세금을 결코 내지 않았다"며 "그들은 어마어마한 돈들을 미국으로 보냈고, 4억달러는 힐러리 클린턴 캠프로 흘러들어 갔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한 거래에 정보요원들이 개입해 가이드 역할을 했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으나 뒷받침할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언급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제안"이라고 말했으나 실현 가능성은 불확실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브라우더는 뉴욕타임스와 전화인터뷰에서 푸틴의 이러한 '비난'은 2012년 제정된 마그니츠키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브라우더는 "마그니츠키법이 푸틴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면서 푸틴은 서방에 있는 자신의 재산이 마그니츠키법에 의해 묶여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그니츠키법은 마그니츠키가 사망한 뒤 고문사했다는 블라우더의 주장이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미국이 마그니츠키의 죽음에 연관된 러시아인들의 미국 비자 발급을 거부하고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한 제재법이다.
브라우더는 "미국은 법치국가이고, 법치가 날 보호해줄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이번 언급이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자신의 관계인들이 4억달러의 자금을 힐러리 캠프에 지원했다는 푸틴의 주장에 대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기이하고 감정적인 반응"이라면서 "그는 불안정하다"고 덧붙였다.
브라우더는 지난 5월 러시아가 국제형사기구(인터폴)에 요청한 적색 수배령에 근거해 스페인에서 잠시 체포됐으나, 인터폴 사무국이 '러시아 요청을 따르지 말 것'을 권고함에 따라 석방됐다.
시사지 애틀랜틱은 러시아가 반푸틴 세력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인터폴 수배를 악용한다고 지적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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