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이기에 앞서 예술품" 도레의 판화성서 출간

입력 2018-07-17 14:41  

"성서이기에 앞서 예술품" 도레의 판화성서 출간
한길사 '큰 책 시리즈' 첫 책…30×40cm 크기에 무게 5.5kg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저 멀리 불길이 활활 치솟고 온 하늘은 연기로 뒤덮였다. 딸로 보이는 여성들을 끌어안은 채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남자의 눈동자에는 참담함이 어려 있다. 이들 뒤에는 참화의 현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선 여성의 조각이 보인다.
"여호와께서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중략)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세기 19장 23~29절)
19세기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다. 목판으로 찍어낸 흑백 삽화임에도, 그림은 아름답고 메시지는 선명하다.
도레는 인상주의 거장 에두아르 마네와 같은 해(1832)에 태어나 같은 해(1883)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도레 삽화집 가격은 300~500프랑으로, 인상파 화가 그림 한 점 값과 맞먹었다. 빈센트 반 고흐 또한 도레를 "정말 위대한 미술가"로 격찬했다. 그런데도 도레는 삽화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탓에 지난 세기 내내 미술사 본류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럽에서 도레 재평가가 이뤄지는 가운데 작업 중에서도 정수로 꼽히는 성서가 국내에 출간됐다.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한길사 펴냄)는 구약성서와 외경, 신약성서의 주요 장면을 담은 성화 241점과 해당 구절을 수록했다.



책은 한길책박물관에 소장된 '더 홀리 바이블'(1866)을 저본으로 제작됐다. 크기는 가로 28.5cm, 세로 42.3cm로 어지간한 큰 책의 배다. 19세기에 발간된 홀리오 판(세로 40cm), 그랜드홀리오 판(50cm)과 비슷하다. 스위스 종이를 어렵게 공수해 만들었다는 528쪽짜리 책은 무게가 5.5kg, 두께는 7cm에 달한다.
책은 한길사가 기획한 '큰 책 시리즈' 첫 번째 결과물이다. 도레가 역시 삽화를 그린 '신곡', '런던: 순례여행'도 곧 출간된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17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 기자간담회에서 "활자 미디어가 위기라고 말하는 시대에 아날로그 책의 아름다운 물성과 미학을 새롭게 구현하는 운동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다"라면서 '큰 책 시리즈' 기획 배경을 밝혔다.
김 대표는 "성서로 '큰 책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성서가 당대 최고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이라면서 "이렇게 큰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디지털이 따라올 수 없는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책은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해설을 맡았다.
신 교수는 "19세기 값싼 삽화가 대량 등장했으나 도레는 전문 판화가를 160여 명 가까이 고용하고, 제지와 잉크도 최고를 쓰는 등 정반대 방향으로 갔다"라면서 "그는 책 자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봤다"고 평가했다.
표지를 장식한 '산상설교', '솔로몬의 재판' 등 삽화들은 내용의 과감한 편집과 세밀한 선, 극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신 교수는 이를 두고 "도레는 삽화를 텍스트를 부각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이 아니라 독립적인 존재, 하나의 그림으로 만들려 했다"라면서 "그 때문에 그의 작품은 회화처럼 조형성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동판화가 도입된 시대였음에도 일일이 손으로 하는 목판화 작업을 고수한 점에서도 도레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33만 원 고가에 책정된 책은 1천 부만 찍었다. 김 대표는 "책이 너무 대량 출간되면서 제대로 대접도 못 받고 나중에는 쓰레기처럼 내팽개쳐지기도 하는 만큼, 이번 책은 리미티드 에디션(한정판)이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일반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판매되지 않고 온라인 주문을 받아 배송된다. 책이 워낙 무거운 데다, 전시 중에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해서다.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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