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올린 수험생은?…"유출 사실 몰랐으면 처벌 어려워"
경찰, 학교 윗선 개입 여부·외부 조력자 존재 파악 '집중'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고3 내신 시험문제를 빼돌려 수험생 성적을 조작한 학교 행정실장과 학부모가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8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시험문제 유출 물의를 일으킨 광주 한 고등학교 행정실장 A(58)씨와 학부모 B(52·여)씨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은 교육 당국을 속여 학사행정을 방해한 혐의를 이들에게 적용했다.
통상적으로 입시 또는 취업비리 사건을 일으킨 피의자들은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받아 처벌받았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 피의자들이 학교의 지적 재산인 시험문제를 훔친 만큼 절도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은 행정실장 A씨가 학교 측 관리 소홀을 틈타 시험지 원안을 복사했고, 원안은 그대로 둔 채 사본만 챙겼기 때문에 절도 혐의를 적용하면 법리 해석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처벌 수위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 벌금', 절도의 경우 '6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차이가 크지 않다.
빼돌린 시험문제로 공부해서 성적을 올린 수험생은 이번 사건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작다.
경찰에 따르면 시험문제를 입수한 학부모 B씨는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시험지와 다른 양식으로 편집했다.
편집본을 출력해서 기출 또는 예상 문제를 정리한 속칭 '족보'라며 아들에게 건넸다.
B씨 아들은 '족보' 내용을 급우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등 경찰이 파악한 정황상 시험문제 유출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은 B씨 아들이 급우들에게 알려준 문제가 실제 시험에 출제되면서 의구심을 품은 학생들 신고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수험생이 스스로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우연히 얻은 시험문제로 공부해 성적을 획득한 사례에 대해 과거 무죄를 선고했다.
B씨 아들의 내신 성적은 1학년 때 1등급을 유지하다가 2학년 들어 2등급 아래로 내려갔고, 중간·기말고사 시험문제가 통째로 유출된 올해는 1등급을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출된 시험지로 중간·기말고사를 본 B씨 아들은 자퇴하기로 했다.
경찰은 시험문제 유출에 개입했거나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추가로 형사입건한다는 방침을 두고 다각도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학부모는 아들 성적을 올려 의대에 진학시키겠다는 목적이 분명했지만, 정년퇴직을 2년여 앞두고 무리한 부탁을 들어준 행정실장은 범행동기가 뚜렷하지 않다.
경찰은 행정실장이 위험 부담을 안고 시험문제를 빼돌린 이유로 금품 제공 또는 퇴직 후 일자리 보장 등 개인적인 대가뿐만 아니라 상부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의사이면서 병원을 경영하는 학부모 B씨는 학교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지난 4월 발전기금 300만원을 기탁했다.
운영회의에 이어 식사 자리에 참가하는 등 교직원과 친분을 쌓았으며 이사장 부인과는 동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시험지 유출 사건이 학교 구성원에게 알려진 이달 11일 이후 B씨와 이사장 부인이 휴대전화로 수차례 연락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전날 A씨와 B씨 집과 자동차, 학교 행정실과 B씨 업무공간에서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하며 추가 입건 대상자가 있는지 파악 중이다.
또 시험문제를 '족보' 형태로 가공하는 작업에 도움을 준 외부인이 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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