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은행 "재정부, 리스크 전가하려" vs 재정부 "후진국 중앙은행 사고"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격화되며 중국 경제의 하방압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재정부와 인민은행이 서로의 정책에 대해 격한 불만을 드러냈다.
정책 입장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중국 정부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책임진 두 기관 간 알력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18일 중국 관찰자망 등에 따르면 두 부처의 알력은 중국 재정부 산하의 재정과학원이 지난 13일 중국재정정책 보고서에서 2017년을 "적극적 재정정책의 효과가 뚜렷했던 해"로 평가하자 인민은행 쉬중(徐忠) 연구국장이 즉각 반박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쉬 국장은 인터넷 기고문을 통해 "적극적 재정정책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이지 않았다"면서 "(보고서에서 밝힌 대로) 재정적자가 늘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재정당국이) 깡패처럼 행패를 부렸다는 뜻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부의 약점을 낱낱이 폭로했다. 그는 "일부 은폐성 채무를 정부 부채로 넘기려 한다", "재정 리스크를 금융부문에 전가하려 했다", "중국 재정부가 미국 재무부와 비교하는 것을 즐기며 권한이 매우 적다고 불평한다"고 비판했다.
쉬 국장은 이어 "재정 투명도가 충분하지 않고 정보공개도 대충대충이며, 공공기관 감독도 미흡하다"고 거침없이 맹공을 퍼부었다. 재정수지 통계와 관련해서도 "인민대표들이 재정보고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마라. 나도 이해 못 한다"고 했다.
그의 신랄한 비판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전재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중에서도 재정 시스템의 불건전성에 대한 비판은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직격탄을 맞은 중국 재정부는 사흘 지난 16일 필명이 칭츠(靑尺)인 한 재정부 직원의 기고문으로 반박에 나섰다. 칭츠는 "금융기관들이 지방채 대란 사태에서 공범, 또는 종범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인민은행이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글은 이어 인민은행의 약점을 들춰냈다. 칭츠는 "위안화 국제화는 중국 경제의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것보다 크게 뒤떨어져 있다", "금리, 외환의 시장화 수준이 국내외 기대와는 여전히 큰 거리가 있다", "정책 결정의 사고 틀이 후진국 중앙은행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힐난했다.
글의 행간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를 둘러보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해외에서도 중앙은행과 재무당국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지긴 하지만 중국에서 통화와 재정이라는 거시 경제정책을 맡는 두 정부기관이 다툼을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두 부처가 이처럼 원격으로 논쟁을 벌이며 책임회피, 상호비판에 나서는 일은 거의 보기 드물다. 특히 중국은 공산당이 주도하는 중앙집권적 정치환경 하에서 당정 공무원에 대외입장과 논조의 일치를 강조해왔다.
인민은행과 재정부의 이번 공개 설전은 중국 정부가 올해 들어 금융리스크 해소책의 일환으로 강력히 추진하는 부채축소 정책을 둘러싼 두 부처의 불만이 배경이 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 앞서 중국 경제는 부채 리스크 관리를 위한 대출규제 강화로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었다.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공무원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거나 금융기관의 대출금 조기상환 압박을 중단해달라는 청원이 쏟아졌다.
인민은행의 과도한 긴축정책이 향후 중국 경제운용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인민은행은 결국 무역전쟁을 앞두고 '실탄'(자금) 제공을 막으며 경제운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기 원치도 않지만 그간의 부채축소 성과를 단번에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싶지도 않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인민은행의 고충이 적지 않다. 재정시스템 개혁이 정체되면서 지방정부들이 부채에 의존해 개발과 성장을 끌어왔던 관행이 청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인민은행으로선 재정부에 불만을 품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신용확대 정책을 펴면서 기업 부문 부채는 200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에서 지난해 170%까지 치솟은 상태다.
이런 채무리스크가 결국 금융의 안정적 운용을 중시하는 인민은행에 전가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 전문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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