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민투표 실시"→"주민투표 실시"…크림주민 자발성 강조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 크렘린궁이 지난 16일 헬싱키 미·러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한 크림 관련 발언의 일부를 수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크림반도 병합의 합법성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국제규범과 유엔 헌장을 철저히 준수해 주민투표를 실시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크렘린궁 사이트에 올라온 기자회견 속기록에는 푸틴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우리는 국제규범과 유엔 헌장을 철저히 준수해 주민투표를 실시한 것으로 생각한다"로 바뀌었다.
푸틴이 무의식중에 주민투표를 실시한 주체로 지칭했던 '우리'(러시아)라는 표현을 속기록에선 뺀 것이다.
러시아가 아닌 크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주민투표를 했다는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지난 2014년 3월 친서방 노선을 채택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징으로 그때까지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를 자국으로 병합했다.
러시아 귀속 찬반을 묻는 크림 거주 주민들의 투표에서 96.7%가 귀속을 지지했음을 근거로 들었다.
러시아는 이후로도 줄곧 크림 의회가 개별 민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유엔 헌장에 따라 실시한 주민투표 결과로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귀속됐으며 현지에 배치됐던 러시아 군인들은 주민투표 실시를 위한 안전만을 보장했다는 주장을 펴왔다.
러시아가 크림에 군대를 배치해 강제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측 비난을 이런 식으로 반박해온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크림 병합을 자국 영토에 대한 강제 점령으로 규정하고 줄기차게 영토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서방도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또 같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서 불법으로 돈을 번 미국인 사업가 윌리엄 브라우더가 2016년 미 대선 기간에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캠프에 거액을 제공했다는 주장을 펴면서도 말실수를 했다.
브라우더는 러시아 투자에 성공해 한때 수십억 달러를 굴리는 헤지펀드인 '허미티지 캐피털'을 운영하면서 러시아 최대 외국인투자자로서 입지를 굳혀 푸틴 정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2011년 친구이자 펀드의 자문 변호사인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모스크바의 교도소에서 사망하자 러시아 수사당국의 고문이 사인이라고 비난하며 반(反)푸틴, 인권 운동을 벌이고 있다.
푸틴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미 당국의 러시아 정보 장교 조사와 브라우더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조사를 '맞교환'하자고 제안하면서 "브라우더의 사업 파트너들은 러시아에서 불법적으로 15억 달러 이상을 벌어 미국으로 송금했고 그 가운데 4억 달러(약 4천500억원)를 클린턴의 선거운동본부로 보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조사해온 러시아 검찰은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뒤 브라우더가 클린턴 캠프에 제공한 금액은 4억 달러가 아닌 40만 달러(약 4억5천만원)라고 정정해 발표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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