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당시 조타기 실외로 흘러나와…선적물 유실 가능성도"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오예진 기자 = 침몰한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선체를 2003년 처음으로 발견했던 잠수 기술자가 '보물선 소문'에 대해 첫 발견 당시엔 없었던 얘기라며 회의적 의견을 내놨다.
러시아 발틱함대 소속의 1급 철갑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인근에서 침몰했으며, 2003년 5월 이 배로 추정되는 선체가 해저에서 처음 발견됐다.
해저탐사 전문업체 S사 이모 대표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2003년 탐사로 선체를 발견할 당시) 금화나 금괴 얘기는 못 듣고 '배를 찾아달라'는 용역만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당시 동아건설과 한국해양연구소(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의 의뢰를 받고 저동 앞바다 탐사작업을 벌여 경북 울릉군 저동리 해안에서 2km쯤 떨어진 약 400m 깊이의 물 밑에서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동아건설에서 (발굴사업) 의뢰를 받은 한국해양연구소 측이 3년간 실패를 거듭하다가 저에게 연결이 됐다"며 의뢰 당시나 첫 발견 당시에는 금괴나 금화 등 보물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건설의 발굴 사업에) 금괴 발견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선체에 금괴가 있었는지에 관한 질문은 안 나왔다"고 밝혔다. 동아건설 측이 그런 내용은 물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당시 1차 목표는 일단 배의 실존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며 "금화나 금괴가 있다는 얘기는 일이 다 끝난 후 신문에 나왔다"고 말했다.
돈스코이호에 엄청난 양의 금화와 금괴가 실려있다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아련한 전설처럼 이어져 왔으며, 1981년에도 민간 업체가 이 배를 찾아내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돈스코이 보물선' 얘기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1999년 동아건설이 탐사에 착수하면서부터다.
이 대표는 선체 발견 당시 금화나 금괴 등은 전혀 보지 못했고 볼만한 여건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 속 배의 모습에 대해 "(배의) 운전대와 같은 '조타기'가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어 "배가 침몰하면 물의 저항이나 배의 무게 때문에 보통 두 동강이 난다"면서 "조타기가 튀어나왔을 정도면 연돌(증기기관의 굴뚝) 정도는 다 날아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선적물이) 유실됐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이 대표는 "우리가 본 건 선체의 일부분이고 전체를 보지는 못했다"면서 "선체나 선적물의 유실 가능성이나 유실 정도까지 다 조사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인양까지 하는 조건으로 계약했지만 동아건설이 부도가 나 추가 작업을 하지 못했다"면서 "그 이후 (바다에) 들어가 본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동아건설은 2000년 11월 부도를 낸 상황에서도 돈스코이호 발굴 추진설로 한동안 주가가 급등하는 등 부침을 겪다가 2001년 상장이 폐지됐다. 이 대표가 돈스코이호를 처음 발견한 것은 동아건설이 파산절차 도중 소액주주 등의 요구로 한동안 탐사작업을 계속하던 때였다. 동아건설이 받았던 발굴승인의 기간은 2014년 만료됐다.
당시 발견한 선체가 돈스코이호가 맞는지에 대해 이 대표는 "배 앞부분이 튀어나온 그 시기의 방식으로 돼 있는 것으로 발견됐고 함포가 거치된 것이 보였다"고 설명하고 "또 러일전쟁 당시 기록된 침몰 위치 인근에는 돈스코이호 외에 침몰한 다른 전함이 없다"며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돈스코이호 탐사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신일그룹이 17일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해 인양을 추진키로 했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이 기업은 지난 15일 오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1.3㎞ 떨어진 수심 434m 지점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돈스코이호에 현재 가치로 약 150조원의 금화와 금괴 약 5천500상자(200여t)가 실려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으며, 관련 테마주가 급등락하는 등 파장도 커지고 있다.
돈스코이호에 실렸다는 보물에 대한 소문이 한 번도 확인된 적은 없다
2000년대 초 돈스코이호 탐사 때 정부와 동아건설에 선박 인양에 따른 국제법상 문제의 자문을 제공했던 이석용 한남대 법대 명예교수는 "(러일전쟁 때) 금괴나 금화가 중요 가치저장 수단이었을 테니 필요한 돈은 갖고 다닌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액수가 너무 크게 부풀려져서 150조 원 등은 지나친 것 같다"면서 "어느 정도 (배 안에) 있어도 유실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공식적으로 150조 원 이라는 발표를 한 적은 없다"면서 "(금괴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지금 현재 '정답'"이라고 말해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20일 신일그룹으로부터 돈스코이호 인양을 위한 발굴승인 신청 신청서류를 접수했으나 서류가 미비해 보완을 요구했다. 신일그룹이 서류에 적어 낸 추정 가치는 10억원에 불과했다.
첫 발견 당시 발굴사업을 했던 동아건설 측은 1999년 발굴승인 신청 당시 추정 가치로 50억원을 적어 냈으며, 최근에는 "우리는 돈스코이에 금 500㎏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하며 현재 가치로는 220억원 수준으로 본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동아건설 측은 '돈스코이호 최초 발견'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어 앞으로 신일그룹 측과 다툼이 예상된다.
이 회사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포항 해양청에 허가를 받아 정상적인 루트로 해당 함선을 찾아낸 우리에게 최초 발견자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건설은 "신일그룹이 한 일은 우리가 먼저 발견한 좌표에 가서 과거보다 좋아진 장비로 비교적 선명한 영상을 촬영한 것에 불과하다"며 "아직 정식 발굴 허가를 받지 않은 신일그룹이 만약 금화 한 개라도 끌어올리면 그것은 도굴"이라고 강조했다.
ohye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