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지친 동물 위해 매주 '별식' 제공…사육사 "힘들지만 보람"

(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동물들 한 번씩 만나고 오면 티셔츠가 온통 땀으로 젖죠. 폭염에 힘들지만, 동물들이 시원해 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기록적인 폭염이 보름 넘게 이어진 24일 전주동물원에서 만난 사육사 이유진(32·여)씨는 동물에게 나눠 줄 수박을 나르느라 분주했다.
올해로 사육사 6년 차인 이씨는 "서두르지 않으면 동물들을 다 못 살핀다"며 수박을 옮기자마자 동물원 입구에 있는 큰물새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씨는 큰물새장과 파충류사, 맹금류사, 개코원숭이사, 그리고 아기동물사를 담당한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사육 동을 청소하고 동물들에게 깨끗한 물과 음식을 제공하는 게 주된 일이다. 건강상태도 이때 확인한다.
이씨와 함께 동물원에서 근무하는 나머지 15명의 사육사도 사자사와 호랑이사, 코끼리사, 곰사 등 각자 맡은 사육 동에서 동물들을 살핀다.
올여름은 유독 더워서 동물들이 기력을 잃거나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아 평소보다 더 꼼꼼히 동물을 돌본다고 사육사들은 말한다.

기온이 부쩍 오르는 정오에는 사육사들의 본격적인 힘쓰기가 시작된다.
오전에 옮긴 수박과 각종 과일을 가득 담아 꽁꽁 얼린 얼음을 동물들에게 나눠주는 시간이다.
육류를 좋아하는 호랑이와 사자, 곰에게는 매주 2번씩 소고기와 갈비를 준다.
더위에 지쳐 아침에 긴 잠을 자던 동물들도 이 시간이 되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울타리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아쉽게도 이날은 과일을 듬뿍 넣은 얼음이 다 떨어져 수박을 나눠주는 것으로 동물들을 달랬다.
사육사들은 푹푹 찌는 날씨에 얼음을 주지 못한 게 미안한 듯, 고압샤워 호스를 끌어와 동물들에게 시원한 물을 뿌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줄기에 고개를 내민 하마는 입을 크게 벌리고 폭염에 메마른 목을 축였다.
사육사가 잘게 썬 수박을 건네자, 하마는 물속에서 큰 덩치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입을 다시 한 번 쩍 벌렸다.

시원한 수박 한 통으로 하마와 교감을 나눈 사육사들은 코끼리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육사가 일일이 썰어준 과일을 받아먹던 하마와 달리, 코끼리는 육중한 발로 수박을 밟아 짓이겼다.
그러더니 과즙이 줄줄 흐르는 수박을 긴 코를 이용해 입으로 집어넣었다.
골고루 수박을 나눠 준 사육사들은 한낮 더위를 피해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햇볕이 가장 강한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아프리카가 서식지인 기린을 포함해 동물 대부분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사육사들도 실내에서 더위를 피한다.
일부는 이때도 사육동을 돌며 동물들이 휴식을 잘 취하는지, 아픈 동물은 없는지 확인한다.
전주동물원에서 생활하는 103종, 618마리 동물 중 아직 폭염 피해를 본 동물은 없지만, 사육사들은 유례없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어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진 사육사는 "요즘 같은 폭염에 사람도 밖에 있으면 맥을 못 추는데 말 못 하는 동물들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면서 "매일 물 뿌리고 얼음을 나르는 일과가 고되지만, 동물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되고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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