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만으로 설명 못하는 인간관계, 증여에 주목하라"

입력 2018-07-26 11:30  

"계약만으로 설명 못하는 인간관계, 증여에 주목하라"
인류학자가 쓴 신간 '진리의 가격'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관계 대부분은 이익에 기반한 계약 형태를 띤다.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자급자족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대개 재화와 서비스를 사고파는 방식으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명예와 기부, 호의, 연대 같은 가치를 존중한다. 기부는 돈으로 명예를 얻는 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익명으로 돈을 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렵게 모은 재화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장부상 손해 보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프랑스 태생 인류학자 겸 철학자 마르셀 에나프가 쓴 '진리의 가격'은 계약관계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인간관계 이면을 증여에 바탕을 둔 선물관계라는 틀로 분석한 책이다.
논의는 책 제목처럼 '진리의 가격'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 사상가인 소피스트는 많은 수업료를 받고 강연 활동을 했지만, 소크라테스는 공공장소에서 보수 없이 지식을 가르쳤다.
저자는 "이윤에 대한 전적인 거부, 이것이야말로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말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였다"며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경멸받는 상인의 형상에 비유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비난의 근거를 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진리는 어떻게 전수해야 할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아리스토텔레스가 펼친 "스승에게 대가를 치르는 방식으로 보답할 수 없기에 부모나 신에게 하듯 적절한 선물을 가지고 예우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찾는다.
저자는 재화와 선물을 분명히 구분하면서 선물을 주고받는 증여가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 추적한다.
그는 선물을 주는 행동인 증여에 주목한 마르셀 모스(1872∼1950)의 학설을 보완하는 한편 선물관계가 계약관계로 진화했다고 본 칼 폴라니(1886∼1964)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계약관계와 선물관계는 인간관계의 양 극단에 있고, 인류는 많은 영역을 화폐 척도로 환산하면서도 일부 가치는 돈의 저울에 올려놓기를 주저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일방적 증여뿐만 아니라 선물을 받은 사람이 다른 선물을 돌려주는 '대갚음' 형태의 증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대갚음은 동맹의 보증이자 상호적이고 공적인 인증 징표라고 주장한다.
이어 "의례적 선물 교환의 목적은 일정량의 부를 전달하거나 재물을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명예롭게 하는 데 있다"며 "주는 물건의 주된 가치는 상징적이고, 주는 쪽에서 볼 때 선물은 자신의 징표이자 자아 자체"라고 강조한다.
낯선 사람에게 과감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모험을 감행하고, 대갚음을 통해 타자를 자기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증여의 본질이라는 것이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이처럼 모든 인간관계를 돈으로 바라볼 수 없고, 개방성과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선물관계가 존재한다는 시각은 이방인을 대할 때 이익을 따지기보다는 환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의례적 증여가 호혜적인 까닭은 동맹 때문"이라며 "인정은 존중이 그렇듯 상호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눌민. 김혁 옮김. 644쪽. 3만8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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