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스케일'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어느 포유동물이든 심장이 평생 뛰는 횟수는 거의 같다고 한다.
생쥐는 겨우 2~3년밖에 못 살고 코끼리는 75년까지 살지만 평생의 심장 박동 수는 동일하게 약 15억 회라는 것.
코끼리는 몸무게가 쥐보다 1만 배 더 무겁지만 살면서 사용하는 에너지(대사율)는 쥐의 1천 배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코끼리 세포는 수가 쥐보다 1만 배나 많지만 에너지는 10분의 1만큼만 쓴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미국 이론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 샌타페이연구소 특훈교수는 저서 '스케일'(김영사 펴냄)을 통해 이 같은 동물들의 몸 크기와 생리적인 특징 간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책에 따르면 동물의 몸집이 2배로 늘어날 때 대사율은 100%가 아니라 75%(4분의 3) 증가한다고 한다. 크기가 두 배 커질 때마다 에너지는 25% 절약된다는 뜻이다.
이를 '스케일링 법칙'이라고 하는데 포유류는 물론 조류, 어류, 갑각류, 세균, 식물, 세포까지 거의 모든 생물군에 다 들어맞는다.
단지 몸집과 대사율만이 아니라 성장률, 심장 박동 수, 진화 속도, 유전체 길이, 미토콘드리아 밀도, 뇌의 회색질, 수명, 나무의 키, 심지어 잎의 수에 이르기까지 이와 비슷한 규칙을 따른다.
이 같은 현상은 막스 클라이버라는 생물학자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복잡계 과학의 대부로 불리는 저자는 '스케일링 법칙'을 생물군을 넘어 전체 생태계와 도시, 기업 등으로까지 확장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사 모두를 아우르는 '대통일 이론'으로 발전시켜나간다.
이는 고도로 복잡한 모든 현상 밑에는 하나의 공통된 개념 구조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를 파악함으로써 세계를 작동시키는 단순한 규칙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복잡계 과학의 원리를 따른다.
저자는 문명의 용광로이자 성장과 혁신의 토대인 도시에 먼저 초점을 맞춘다.
도시도 규모가 변화할 때 '스케일링 법칙'을 따른다고 본다. 다만 이 경우 지수는 0.75(4분의 3)가 아니라 0.85라는 것만 다르다. 기업의 '스케일링 법칙' 지수는 0.9로 산출된다.
도시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날 때 필요한 도로, 전선, 가스관, 주유소 등 기반시설의 양은 세계 어디서나 100%가 아니라 85% 증가한다.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성이 높아지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셈이다.
도시에는 이와 함께 인구가 두 배가 될 때마다 특허 수, 국내총생산(GDP), 임금 등 사회경제적 부산물이 두 배보다 15%가 더 증가하는 '15% 수확체증의 법칙'도 작용한다. 독감 환자 수, 범죄 건수, 오염 같은 부정적인 부산물도 똑같이 15% 더 빨리 늘어난다.
생물과 인간사회의 성장, 발전, 쇠퇴는 이 같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큰 동물일수록 더 오래 살고 더 느리게 진화하고 심장 박동도 더 느리다. 반면 도시는 클수록 질병이 더 빨리 전파되고 사업체들이 더 빠르게 생겨나 사라지며 사람들은 더 빨리 걷는다.
저자는 이 같은 연구를 통해 급속한 도시화, 성장, 세계의 지속 가능성, 암, 노화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인류가 씨름하는 주요 도전 과제와 현안을 하나의 틀로서 파악하고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사회적·물리적으로 인간이 만든 계들과 자연환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정량적이고 예측적이고 기계론적인 이론을 포함하는 폭넓고 통합된 과학적 기본 틀이 필요하다. 나는 이 기본 틀을 지속 가능성의 대통일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제 통합된 계 수준이라는 의미에서 세계의 지속 가능성을 규명할 맨해튼 계획이나 아폴로 계획과 비슷한 유형의 대규모 국제 계획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한음 옮김. 664쪽. 3만원.
abullapi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