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도불한 뒤 선이 숲으로…20년간 숲 그리기 천착
파리 교외서 개인전…佛 미술전문지 아르탕시옹 "놀라운 숲의 사절" 호평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숲의 화가' 변연미가 생명력이 가득한 숲을 대형 화폭에 담은 작품들로 프랑스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파리 근교 드랑시의 19세기 저택을 시립미술관으로 개조한 '샤토 드 라두세트'에서 다음 달 2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고요함 속에 생명의 신비한 힘을 가득 품은 변연미의 숲 그림 4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제목은 '숲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A l'ecoute de la foret)로, 드랑시 시청이 후원한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작품활동을 해온 변연미는 프랑스 화단에서도 '숲의 화가'로 널리 알려진 중견 서양화가다.
원래는 선(線)에 천착해 비구상 회화를 주로 그렸던 그는 1999년 파리에 상륙한 태풍으로 파리의 작업실 인근 뱅센 숲의 큰 나무들이 쓰러지고 뿌리 뽑히는 것을 본 뒤 인식의 충격을 겪고 숲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25일 파리 교외에서 만난 변연미는 왜 숲을 그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느 날 바람이 아주 심하게 부는데 주택의 덧창들이 떨어져 날아다니고 나무들이 뿌리 뽑히는 상황이 비현실적이면서도 매우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그 전까지 주로 그려온 선의 단순한 형태가 그때를 기점으로 점차 식물의 형상을 띄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저도 모르게 숲을 계속 그리게 됐어요."
변연미의 작품들은 나무와 숲이 가진 다채로운 힘과 분위기를 대형 화폭에 독특한 질감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그림들에서는 일반적인 유화와 다른 강렬한 터치와 질감이 느껴지는데 이는 커피 찌꺼기, 모래, 먹물, 잉크 등 다양한 재료를 쓰기 때문이다.
재료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붓이 아닌 장갑을 끼고 손에 물감을 잔뜩 묻혀 2∼3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에 힘차게 그림을 그린다. 인간의 육체가 가진 역동적인 힘을 숲의 생명력으로 고스란히 옮겨놓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변연미는 때로는 봄·여름의 숲이 가진 밝고 푸른 역동성을, 때로는 가을·겨울의 숲이 가진 어둡고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다채롭게 드러낸다.
프랑스의 미술 전문지 '아르탕시옹'(Artension)은 최신호에서 변연미를 "놀라운 숲의 사절"이라고 칭하고 이번 개인전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아르탕시옹은 "한국인 작가의 거대한 화폭이 이 독특한 전시 공간을 웅장한 숲의 시학(詩學)으로 열어젖혔다. 고요한 숲, 그것은 마치 우리 인간들처럼, 그러나 우리와는 다른 시공간에서 끊임없이 생동하고 성장하며 소멸한다"고 평가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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