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강제징용 피해자 목숨 대가로 사법부·외교부·김앤장 유착"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보상금 청구 사건을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거래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의 사과와 관련자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은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미쓰비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제기한 국가보상 청구 사건의 담당 대법관이 '한일 외교관계에 큰 파국을 가져오는 사건'이라며 재판연구관에게 판결의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전날 한 현직 판사가 고백했다"며 "이는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양승태 법원행정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판결을 보지 못하고 하나둘씩 세상을 뜨는 동안에도 재판의 결론을 미루는 대가로 외교부로부터 해외 파견 법관 자리를 얻어내려 재판거래를 한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염원을 내팽개치고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한 사법부는 더는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들 단체는 "외교부 또한 2013년 이 판결이 확정되지 않도록 하려는 일본 공사의 요구를 수차례나 법원행정처에 전달해 노골적으로 재판에 개입했다"며 "당시 한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외교부 입장을 반영해 재판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했고, 일본 기업들의 대리인인 김앤장을 통해 외교부의 의견서를 대법원에 접수하고, 국외송달을 핑계로 재판을 미루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2016년 10월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법률사무소가 당시 심의관의 제안대로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을 촉구하는 내용의 문서를 공개했다.
이들 단체는 "의견서 제출 촉구에 따라 2016년 11월 외교부는 '손해배상 시 한국이 국제법을 준수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사법부와 외교부, 그리고 국내 최대 법무법인 김앤장이 결탁해 재판을 거래함으로써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는 "일본에서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볼 때는 '가재는 게편(일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우리나라 외교부도 게편 같더라"며 "수없이 기자회견을 해왔지만, 이처럼 정말 한심하고 슬픈 적은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새로운 재판부 구성 및 심리 진행 등을 사법부에 요구하고, 재판거래 관련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검찰에 촉구했다.
아울러 국회에는 강제징용 소송에 대한 사법부와 외교부의 재판거래에 대해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을 요구했다.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은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 일했던 피해자 9명이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국내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1심과 2심에서는 피해자들이 패소했지만, 대법원은 2012년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고법은 개인 청구권이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법리 판단 취지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미쓰비시중공업이 다시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이 사건은 현재까지 대법원에 계류 중이며, 그동안 소송을 낸 징용 피해자 9명 중 이춘식(98) 씨를 포함한 2명 제외한 7명이 세상을 떠났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세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동일한 쟁점을 놓고 다투면서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미 대법원에서 결정이 난 만큼 기존의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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