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18조 번 은행, 일자리는 7천400개 줄였다

입력 2018-07-29 06:05   수정 2018-07-2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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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18조 번 은행, 일자리는 7천400개 줄였다

돈되는 주택대출만 치중…중기대출은 담보 있는 곳만
5년여간 점포 871개 줄여…모험자본 공급 역할은 외면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구정모 박의래 기자 = 지난 23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연합회 초청 은행장 만찬 간담회에서 "은행산업이 신뢰 회복을 위해 쓸모 있고 도움되는 금융을 해달라"고 했다.
이날 발언은 금융가에서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쓸모 있고 도움되는'이라는 표현의 배경이 도대체 뭔가 하는 의문이었다. 뒤집어 보면 은행산업이 그동안 쓸모없었고 도움도 되지 않아 신뢰할 수 없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땅 짚고 헤엄치기' 주택대출만
윤 원장이 이 발언의 진의를 따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당일 "생산적인 분야로 자금이 원활히 배분될 수 있도록 자금중개기능을 활성화해달라"는 말을 강조했다.
은행 본연의 역할인 자금 중개 기능을 제대로 못 했다는 문제 제기인 셈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의 총 여신(원화대출금) 1천526조원 중 기업여신은 817조원으로 전체 여신의 54.2%를 차지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의 67.9%에 비하면 큰 폭의 감소를 의미한다. 외환위기 직후에 전체 대출의 ⅔가 기업 대출이었다면 지금은 ½을 가까스로 넘는 것이다.
이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이후 가계대출 증가율이 연평균 6.2%로 기업대출 증가율(5.4%)을 꾸준히 상회한 결과다.
은행이 생산적인 분야인 기업대출을 줄인 이유는 간단하다. 가계대출을 늘리는 것이 손쉽게 돈 버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은 통상 수익률이 기업대출보다 높고 연체 관리도 쉽다. 스스로 위험 선별기능을 키우기보다는 주택담보대출 등 손쉬운 영업에 안주한 것이다.



기업대출은 양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악화해 사실상 '전당포 영업'이란 말이 나온다.
지난해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에서 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58.1%로 2009년 41.9%를 기록한 이래 한 해도 빠짐없이 커졌다. 중기대출에서 신용등급 1~4등급 우량차주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09년 54.1%를 기록한 이후 해마다 상승해 지난해말 71.7%를 기록했다.
은행이 담보가 있고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중소기업들만 상대하니 나머지 기업들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했다는 말이다. 이는 혁신·성장부문에 대한 모험자본의 공급·중개를 그만큼 소홀하게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은 부도율이 높지 않고 수익률도 우수하니 은행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을 많이 한 것"이라면서 "은행을 더 만들거나 은행을 분할시켜 경쟁을 더 치열하게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고용은 외면…돈 안 되면 영업점 가차 없이 폐쇄

시중은행들은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고용 측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은행산업은 대표적인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지만 인터넷·모바일 뱅킹 등으로 효용이 떨어진 근로자들에게 구조조정의 칼을 내밀었다. 퇴직금을 넉넉히 챙겨주는 명예퇴직의 형태지만 일자리를 줄인 대가로 은행들의 수익성은 점점 더 좋아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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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말 기준 일반은행과 특수은행 등 19개 국내은행의 총임직원 수는 10만9천989명으로 3년 전인 2015년 3월의 11만7천342명 대비 7천353명 줄었다.
연평균 2천451개의 일자리를 줄였다는 의미다. 은행들이 매년 신규 고용을 창출한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소리 소문 없이 이뤄지는 구조조정 폭이 훨씬 더 크다 보니 매년 고용이 줄어드는 것이다.
일자리를 가장 많이 줄인 곳은 국민은행이다. 2015년 3말 기준 2만203명에 달하던 임직원이 올해 3월 기준으로 보면 1만6천878명으로 4천325명이나 줄었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에서 일하던 근로자도 KEB하나은행으로 합병 등 과정을 거치면서 1만6천210명에서 1만3천357명으로 2천853명 줄었다.
이 기간에 우리은행은 1천143개, 신한은행은 687개의 일자리를 없앴다.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됐던 이 기간에 이들 국내은행은 총 18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2015년에 4조4천억원, 2016년에 2조5천억원, 2017년에 11조2천억원이다.
올해 역시 상반기 기준으로 국민과 신한, 우리, KEB하나 등 4대 은행만 5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일자리를 줄여 몸집이 가벼워진 은행들이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이다.
은행들은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영업점 역시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다.
2012년 12월 기준으로 7천835개에 달했던 국내은행의 점포는 올해 3월말 현재 6천964개로 871개가 줄어든 상태다. 특히 씨티은행은 지난해 134개 영업점포를 44개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spee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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