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국공연예술센터 설립, 전통문화 홍보·입양인 정체성 확립 나서
한국인 첫 '미국 헤리티지 펠로십' 선정…"2∼3년내 문화센터 짓겠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입양인 한 명 한 명이 제 자식 같아요. 미국 문화 냄새만 맡고 자란 그들에게 모국의 성장과 제대로 된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국 뉴욕한국공연예술센터 박수연(64) 원장이 지난 22일 미국에 입양된 한인 14명과 그 부모 등 31명을 이끌고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을 찾았다. 국악원의 '해외동포 국악 단체 초청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다. 박 원장은 2006년부터 두 해를 빼고는 올해 10번째 입양한인들과 함께 5박 6일 캠프에 합류했다.
입양인들은 양부모와 함께 사물놀이와 강강술래를 배우고 진도 곳곳과 인근 조도에 들어가 섬마을 체험을 했다.
연수를 마치고 방문단과 함께 서울에 들른 박 원장은 3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입양인들이 아주 좋아하고 행복해했다. 내년에도 또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들이 시집 장가를 가서 자녀 손을 잡고 올 수 있는 날까지 계속 방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에 있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함께 온 입양인 4명의 위탁모와 만남 행사에도 참가했다.
그는 미국인으로 사는 2천여 명의 입양한인에게 한민족 정체성을 심어주는 역할과 함께 36년 동안 우리의 전통음악과 무용을 선보일 수 있는 곳이면 미국 어디든 달려가 무대를 꾸몄다.
"한국의 소리, 음악, 무용 등 '우리 것'을 미국인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연 무대를 만들고, 원하는 곳이 있으면 마다치 않고 달려갔죠."
박 원장은 고(故) 이매방 선생으로부터 춤을 배우고, 고 이창배 명창에게서 소리를 사사했다. 춤과 소리꾼으로 촉망받던 그의 이름은 국내 무대가 아닌 미국에서 더 알려졌다.
인천광역시 강화에서 태어나 경기도 파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박 원장은 어려서부터 소리와 몸짓이 예사롭지 않다는 주변의 평가에 따라 서울에 올라와 소리와 춤을 배웠다.
그는 이춘생 선생의 권유로 해외 공연팀에 합류해 1982년 미국 뉴욕 땅을 밟고는 그곳에 정착했다. 이후 민속예술가로 이름을 날리겠다는 목표는 미국에 국악과 전통춤을 알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도착하던 그해 9월부터 매년 한인사회가 마련하는 '뉴욕 추석맞이 대잔치'에서 살풀이와 승무 춤을 추고, 경기민요 등 우리의 소리를 부르며 동포들의 향수를 달래줬다. 또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소리와 몸짓을 보여주기 위해 뉴욕 링컨센터 에버리피셔 홀, 퀸스 칼리지, 브로드웨이 심포니 스페이스 등에서 공연했다.
뉴욕주가 개최하는 이스라엘 퍼레이드에도 매년 초청돼 우리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맨해튼에서 도보로 이어지는 퍼레이드에는 풍물팀이 참여하고 있고, 유대인 기금 모금 행사에도 나선다.
수많은 무대에서 직접 공연을 하거나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그가 초청한 국악계 인사는 김소희·은희진·이은관·백인영(이상 작고)·김찬섭·남해성·박계향·신영희·김청만·이정란·원장현·김일구·임동창·이광수·이태백·윤진철·시나위 앙상블 등이다. 또 무용계에서는 이매방·임이조·정재만(이상 작고)·양길순·진유림·이현자 등을 모셨다.
박 원장은 국내 내로라하는 명창과 춤꾼들을 자비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초청해 미국 무대에 서게 했다. 오로지 한국의 제대로 된 소리와 몸짓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993년 한국국악협회 미동부지부의 역할을 하는 'KTPAA'(코리안 트레디셔널 퍼포밍 아트 어소시에이션)을 설립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두 해를 빼고는 23년째다. 오는 11월 10일에는 뉴욕주립대(SUNY) 펄채즈에서 '23회 정기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KTPAA는 2010년 뉴욕한국공연예술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센터에서는 설립 초부터 정기 클래스와 단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매주 월∼토요일 운영하는 정기강좌 외에 전문가들을 위한 특별강좌 워크숍과 매년 7월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한 국악강습이 있다. 특별강좌에는 미국의 전문가들이 한국 음악과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기 위해 참가하고 있으며 한인 1.5∼2세들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온다.
그의 한국 전통문화 공연과 입양인 모국 방문 행사는 사업가인 남편 제리 워스키 씨의 든든한 후원으로 진행된다. 1949년 폴란드에서 미국에 이주한 유대계 미국인인 남편은 1939년 홀로코스트의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한식당 옥류장을 운영하며 KTPAA를 꾸려가던 박 원장은 1989년 그와 결혼했다.
워스키 씨는 대한탁구협회와도 인연이 깊다. 1997년 김택수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빠졌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 탁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경기하는 곳은 어디든 찾아가 응원을 하고, 음식을 대접한다고 한다.
박 원장은 2008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헤리티지 펠로십'(살풀이)에 뽑혔다. 우리로 말하면 '인간문화재'로 선정된 셈이다. 당시 연방 의회에서 살풀이춤과 승무 춤을 추고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과 만찬을 했다.
그는 오는 8월 10일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헤리티지 펠로십 선정 10주년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박 원장은 9월 8∼9일 메릴랜드에서 열리는 78회 포크 페스티벌에서도 공연한다. 유미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의 초청으로 사물놀이, 부채춤, 설장구, 가야금 병창, 판소리 등을 선사할 계획이다.
"다시 태어나도 춤을 추고 소리를 할 것"이라는 박 원장은 뉴욕에 한국전통문화센터를 지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센터의 선생님들이 고가도로 밑에서 비 맞아 가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센터를 만들어 상시 공연도 하고, 후배도 양성하고 싶어요. 센터는 한옥으로 지을 것이고요. 지금 준비하고 있으니 2∼3년 내 이뤄질 것이라 믿고 있어요."
박 원장은 8월 3일 대전 목원대에서 이태백 교수가 기획한 '남도음악의 맥' 공연 무대에 올라 살풀이춤을 선보이고 6일 미국으로 돌아간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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