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시절 사법협력관 5명 중 4명 심의관 경력
"내부에서도 문제 인식했지만 아무도 말 못 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양승태 사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소송 절차를 뒤로 미루면서 '반대급부'로 얻어내려 한 의심을 받는 해외공관 파견직을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들이 사실상 독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해외공관 파견을 2013년 재개시켰고 지난해까지 꾸준히 자리를 늘렸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조직 내 판사들의 복지를 위해 해외공관 파견을 추진하면서 주무 부처인 외교부에서 관심을 둘 강제징용 소송 등을 협상 도구로 삼은 결과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대법원이 이미 한 차례 판단을 내렸던 강제징용 소송이 5년째 별다른 이유 없이 계류된 점도 이 같은 의심을 짙게 하고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 '사법협력관'이라는 이름으로 해외공관 파견을 재개시키는 데 성공했다. 2006년부터 주미·주오스트리아 대사관에 판사를 한 명씩 보냈지만 정부가 2010년 돌연 파견을 중단하는 바람에 이를 되살리는 게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2013년 2월 네덜란드 대사관을 시작으로 2014년 2월 주유엔 대표부에도 판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주제네바 대표부에도 판사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 세 곳에는 통상 '단독 또는 부장판사급' 법관이 2년간 파견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네덜란드 대사관과 주유엔 대표부에 각각 2명씩 판사를 보냈는데 모두 2009∼2013년 사이 법원행정처에서 심의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네덜란드 대사관에는 정보화심의관·사법지원심의관 출신이, 주유엔대표부에는 정보화심의관·기획제1심의관 출신이 각각 파견됐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해외공간에 파견된 법관 중에서는 퇴임 직전인 지난해 6월 파견 명령을 받은 주제네바 대표부 사법협력관만 법원행정처 근무 경력이 없다.
법원행정처는 사법협력관의 역할로 ▲ 국제재판기구 현안 파악 및 판결동향 분석 ▲ 사법 관련 국제회의 참여 ▲ 대한민국 관련 현안 연구 및 대응방안 검토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 내에서도 엘리트 법관으로 평가받는 법원행정처 심의관 출신 판사들이 '선발성' 인사에 해당하는 사법협력관 자리까지 줄줄이 차지한 점을 놓고 검찰은 의심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하려는 시도가 조직 내부 '복지 증진' 또는 소수 사법행정 집단의 '잇속 챙기기'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해외공관 파견 법관은 영어 실력과 사법연수원 기수 등 조건을 공고하고 면접 등 선발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파견자는 법원행정처 처·차장과 기조실장을 중심으로 한 간부들이 사실상 내정하는 방식으로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해 2월 네덜란드 대사관 사법협력관을 교체하면서 심의관 경력이 없는 판사를 보냈다.
당시 법원행정처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공고를 내놓고 특정 판사에게 '왜 지원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언질을 주기도 했다"며 "심의관 출신들이 계속 나가는 데 대해 내부에서도 문제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아무도 직언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가 해외공관 파견에 열을 올리면서 재판에 개입한 듯한 정황은 검찰이 확보한 문건에서 드러난다. 법원행정처가 생산한 다수의 문건에는 2012년부터 해외 파견지 확대 방안을 꾸준히 모색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강제징용 소송과 관련해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주자"고 언급한 문건도 발견됐다. 이 소송을 외교부와 거래 대상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 대목이다.
외교부와 무관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에서도 청와대에 "재외공관 법관 파견에 적극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적을 만큼 법관 해외파견 확대가 법원행정처의 핵심 현안이었던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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