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조흐리' 인도네시아가 내세우는 'AG의 얼굴'

입력 2018-07-30 15:17  

'맨발의 조흐리' 인도네시아가 내세우는 'AG의 얼굴'
인도네시아 최초 세계주니어육상대회 남자 100m 우승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누나, 나 돈이 필요한데…."
라루 무함마드 조흐리(18·인도네시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조흐리의 큰 누나 바이크 파질라는 "과묵했던 동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부탁"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4남매 중 막내 조흐리는 인도네시아 로복섬에서 맨발로 훈련하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2017년 4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하려면 스파이크가 필요했다.
조흐리의 누나는 40만 루피아(한화 약 3만1천원)를 구해 동생에게 건넸다.
조흐리는 이후 누나에게 손을 내밀 필요가 없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조흐리 가족에게 집을 선물했고, 기업들이 앞다퉈 조흐리를 후원했다.
파키스탄 데일리 타임스, 로이터 통신 등이 30일(한국시간) 전한 '인도네시아 육상 영웅의 탄생 비화'다.




로이터 통신은 "조흐리는 아시안게임 개최국 인도네시아의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조흐리를 초청해 식사를 하고, 총리 등 정부 관계자가 조흐리의 훈련장을 찾아 응원한다. 그의 이름을 딴 가구 브랜드가 생길 정도로 조흐리의 인기가 치솟았다.
하지만 1년 전만 해도 조흐리는 '운동화 값'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고아였던 조흐리는 고향 로복섬에서 맨발로 모래밭을 달렸다. 축구를 좋아했지만, 체육 교사가 조흐리의 '달리기 재능'을 발견했고 육상부 입단을 권했다.
한 번도 육상 스파이크를 신어본 적이 없던 조흐리는 2017년 4월 자국 주니어육상대회에 참가하고자 처음 스파이크를 마련했다. 그 대회에서 조흐리는 10초42로 남자 100m 우승을 차지했다.
인도네시아 주니어 대표팀에 선발된 그는 올해 6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주니어대회에서 10초27로 우승하며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이 열린 핀란드로 향하는 과정도 험난했다.
고아였던 조흐리는 핀란드 비자를 받기 위해 보증인을 세워야 했다. 인도네시아 육상연맹 관계자 두 명이 보증인으로 나선 덕에 조흐리는 핀란드에 도착했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났다.
조흐리는 7월 11일 핀란드에서 치른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10초18의 기록으로 남자 100m 챔피언에 올랐다. 조흐리 이전에는 인도네시아 선수가 세계주니어선수권 남자 100m 결승에 나선 사례도 없었다.
조흐리는 단박에 '스포츠 영웅'으로 떠올랐다. 귀국길에는 취재 경쟁이 펼쳐졌고, 기업들의 후원 문의도 쇄도했다.
조흐리의 누나는 "스파이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웃었다.
인도네시아는 조흐리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일으키길 기대한다.
조흐리는 "이런 기대를 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라고 고마움을 표하면서도 "아시안게임은 주니어 선수권과 다른 무대다.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많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실제로 조흐리는 올시즌 아시아 남자 성인 100m 랭킹 10위다. 9초91을 뛴 쑤빙톈(중국) 등 조흐리보다 월등한 기량을 갖춘 선배들이 많다.
하지만 조흐리는 "맨발로 해변을 달릴 때도, 달리 방법이 없어서 물속을 걸으며 근육을 키울 때도 '포기하지 말자. 더 나은 미래를 꿈꾸자'라고 다짐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jiks7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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