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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아버지' 나흘간 민주시민장 엄수…부산서 서울광장 지나 천리길
(서울·남양주·부산=연합뉴스) 권숙희 성서호 손형주 기자 = "당신이 남기신 정신을 잊지 않고 이 나라 바로 세우는 데 이어가겠습니다."
고(故) 박종철 민주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31일 아들의 곁에서 영원한 잠에 들었다. 향년 89세.
지난 4일간 민주시민장(葬)으로 치러진 고인의 마지막 장례 절차는 이날 오후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유족들과 민주화운동유가족협회, 시민들의 배웅 속에 마무리됐다.
오후 6시 30분께 모란공원에서 거행된 안치식에서 박준기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이사장, 이부영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지선스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추도사를 했다.
이부영 이사장은 "아들이 이루려고 했던 일을 아들을 독재자에게 빼앗긴 뒤 아버지가 이어받아 이뤘다"면서 "31년간 고인이 아들의 민주화운동을 이어받아 하는 동안 우리는 큰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유족인사는 고인의 큰아들인 종부씨가 대표로 하고, 호상인사는 김종기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가 했다.
안치식에는 함세웅 신부, 김한정 의원, 조광한 남양주시장, 서경원 전 의원, 이부영 전 의원을 비롯해 전국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원과 시민 등 100여명이 자리를 지키고 고인을 추모했다.
묘역 앞뒤에는 '종철아! 잘 가 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아부지, 많이 힘드셨지예… 인쟈부터 막내가 잘 모시겠습니더'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이날 고인을 태운 영구차는 오전 부산에서 영결식을 마치고 한울삶, 서울광장,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거치는 450㎞의 길을 달려왔다.
영결식에서는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씨도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장례차량은 이날 오전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치고 출발해 부산 영락공원에 도착해 고인을 화장한 뒤 유가협의 사랑방인 서울 동대문구 '한울삶'으로 향했다.
이어서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路祭)는 폭염 속에서도 많은 시민이 참여한 가운데 엄수됐다.
오전의 영결식과 마찬가지로 노제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시민 박혜원(52) 씨는 "박종철, 이한열 열사 두 분과 함께 대학 시절을 보낸 데다 박정기 선생님의 큰며느리와 직장 동료"라며 "박 열사의 죽음으로 아버님의 가정이 무너졌었는데 이렇게 가시는 길이라도 시민장을 치를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노제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김두관·원혜영 의원,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유가족들은 노제를 마치고 장지인 모란공원에 도착하기 전 서울 용산구 경찰청 인권센터(옛 남영동 대공분실)에도 들렀다.
대공분실에 걸려 있던 박종철 열사의 영정이 31년의 세월을 지나 고인이 된 아버지의 영정과 마주하자 분위기는 한층 숙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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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지난해 초 척추 골절로 수술을 받고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최근 기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28일 오전 5시 48분께 생을 마감했다.
슬하에 종부, 은숙, 종철 3남매를 둔 박 씨는 공무원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으나 막내인 박 열사가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하다가 숨진 뒤 지난 31년간을 민주화에 헌신해 '유월의 아버지'로 불렸다.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7년 1월 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가 다음날 사망했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허위 조사 결과를 발표해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위장하려 했다.
6·10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 사건은 올 초 개봉한 영화 '1987'을 계기로 재조명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부자(父子)가 나란히 영면한 마석 모란공원은 전태일 열사, 문익환 목사, 김근태 의원 등 민주화와 노동운동에 앞장선 이들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앞서 지난 23일 세상을 등진 정의당 노회찬 전 의원도 이곳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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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박종철 대신 민주열사로 산 아버지 박정기 아들 곁으로
su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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