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통합 추구하는 유럽 향한 상반된 시선

입력 2018-08-02 13:46  

다양성과 통합 추구하는 유럽 향한 상반된 시선
'문명의 그물'·'유럽의 길을 묻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유럽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민족국가 간 치열한 영합과 경쟁을 벌였고, 편을 나눠 전쟁을 치렀다.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뒤 유럽은 통합과 협력을 택했다.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 출발한 유럽연합(EU)은 오늘날 28개 회원국이 가입한 거대한 정치·경제 공동체로 거듭났다. 그러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극우 민족주의 대두로 유럽통합에 균열이 일어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엇갈리는 시선으로 유럽 문명과 유럽연합을 바라본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조홍식 숭실대 교수는 신간 '문명의 그물'에서 12가지 키워드로 유럽 문명을 분석한다.
저자가 유럽 문명을 이해하는 잣대로 선정한 주제어는 언어·종교·표상·음악·대학·지배·전쟁·도시·자본·평등·교류·축구.
그는 문화 측면에서 유럽이 어느 정도 동질성을 띠지만, 더욱 중요한 가치는 다양성이라고 강조한다.
유럽연합에 대해서도 "민주주의라는 구조 동질성을 바탕으로 정치제도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운동"이라며 "다양성이 존재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실험이 가능했고, 우수한 제도나 요소가 자연스럽게 주변 지역으로 확산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언어만 하더라도 유럽연합 공식 언어는 24개다. 회원국이 쓰는 언어는 사용 인구가 적더라도 모두 공식 언어로 인정한다. 이는 효율성보다는 다양성을 강조한 결과라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태도는 종교에서도 나타난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기독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기독교는 가톨릭과 그리스정교, 개신교로 분파가 나뉘었고, 최근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이슬람교도가 급증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유럽 문명 핵심은 다양한 기독교 종파와 유대교, 이슬람, 근대 세속주의까지 포괄하는 다양성과 관용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유럽 문명이 다양성을 지향하며 발전한 과정을 느슨하고 유연하게 연결된 '그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지속성, 복합성, 다원성이 유럽 그물의 특징이라고 결론짓는다.
영국 출신 역사학자이자 좌파 평론가인 페리 앤더슨은 유럽연합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조 교수와 달리 상당히 부정적이다.
그는 원서가 2009년 출간된 '대전환의 세기, 유럽의 길을 묻다'에서 유럽통합 역사와 이론, 국가별 상황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단일 통화, 독일의 역할, 회원국 증가를 유럽연합이 직면한 쟁점으로 거론하면서 "유럽연합이 동유럽 국가를 받아들이면서 핵심부 유럽 자본은 값싼 노동력 풀을 지니게 됐고, 서유럽 노동 조건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국제통화를 획득하고 미국을 넘어서는 경제규모를 자랑하게 되면서 독립적인 유럽을 위한 조건은 어느 때보다 잘 갖춰졌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 그 조건은 뒤집혔다"라며 "유럽연합은 초민족적 주권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국민주권을 약화했다"고 평가한다.
그는 조 교수가 역설한 유럽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근본적으로 유럽은 고전주의 전통, 유대교 전통, 기독교 전통이 갈등 관계를 유지했고, 이로 인해 분열을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유럽을 규정하는 긍정적 요소로 다양성, 혁신성, 보충성을 꼽는 견해에 대해 "갈등은 정적인 타협으로 끝나지 않고, 동적인 종합 속에서 상승해 새로운 갈등을 창출한다"고 역설한다.
역자인 안효상 전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후기에서 2009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사건을 간략히 정리한 뒤 "오늘날 유럽은 평화, 번영, 민주주의 세계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국제적 미덕의 모델로서 유럽이 지속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전망한다.
문명의 그물 = 책과함께. 680쪽. 2만8천원.
대전환의 세기, 유럽의 길을 묻다 = 길. 762쪽. 4만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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