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광장 강렬한 한낮 햇볕·지열 피해 그늘로, 지원센터로
"너무 덥다"…뚝뚝 떨어지는 비지땀 닦아내며 '조그만 성의' 호소
에어컨 앞 수십명 몰려 시원한 바람 쐬며 안도의 한숨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2일 정오 서울역 광장. 수은주가 37도 가까이 오르자 햇빛을 피할 데가 없는 광장은 다른 곳보다 훨씬 한산했다.
간혹 지나는 시민들은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잰걸음을 했지만, 일정한 주거지가 없는 노숙인들은 하릴없이 그늘을 찾아 몸을 누일 수밖에 없었다.
날씨는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몸을 가릴 지붕 하나 없는 노숙인들에게는 잔인한 계절이다.
일부 노숙인들은 지하철 서울역 출구 앞 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더위를 이기고 있었다. 개중에는 러닝셔츠를 반쯤 말아 올려 배를 내놓은 이도, 웃옷을 모두 벗은 채 벽에 기대 쉬는 이도 있었다.
서울역 외부 흡연실 인근에서 만난 노숙인 A씨는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주변인들에게 '조그만 성의'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다. 어눌한 말투로 장황하게 사정을 설명하던 그에게서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너무 덥다" 뿐이었다.
그늘에 누워있던 한 노숙인은 박스만으로는 지열을 견뎌내기 힘들었는지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다.
서울역 앞에서 만난 노숙인 B씨는 "얼어죽을 것만 같은 겨울이 더 힘들었지만, 올해 여름은 겨울 못지않게 힘들다"고 혀를 내둘렀다.
노숙인들은 서울역 앞에 있는 노숙인 지원기관인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 수시로 드나들었다. 자신들을 위한 곳인 만큼 센터 안 대기실에는 스무 명 남짓한 노숙인들이 여유롭게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었다.
2002년 서울역 노숙인 무료 진료소로 시작한 센터는 의료와 주거, 일자리 서비스를 노숙인에게 지원하고 있다. 여성이거나 어린이를 동반한 노숙인, 위험에 처한 노숙인들을 위한 출동·보호 서비스도 제공한다.
센터 박상병 팀장은 노숙인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박 팀장은 "실내와 그늘에 들어가 계신다뿐이지 여름철에도 선생님들의 수가 줄지는 않는다"며 "동절기에는 선생님들을 보호하기 위해 센터 안으로 모셔오지만, 여름철에는 밖에 계시겠다는 분들이 적지 않아 선생님들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역 인근에 있는 취약계층 지원센터 '따스한 채움터'에서는 이제 막 점심을 해결한 노숙인들이 자리를 나섰다.
1년 365일 내내 문을 여는 이곳에는 요즘 같은 휴가철이면 해마다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날이 더운 데다 휴가까지 겹치면 인근의 자원봉사단체들도 잠시 휴식에 들어가 이곳으로 노숙인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따스한 채움터에서 일하는 황성진 씨는 "근처에 있는 노숙인이나 쪽방촌 거주자까지 다 와서 식사를 해결한다"며 "어르신들은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어 다른 곳에서도 종종 오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들 (이번 여름이) 너무 힘들다고 하시더라"며 "비좁은 데다 바람도 통하지 않는 쪽방촌 거주자들까지 거리로 나와 노숙인들과 어울리다가 이곳에서 식사하신다"고 전했다.
한 달간 휴무인데도 봉사 차원에서 출근했다는 황 씨는 "오시는 분들은 많은데 일손이 부족해서 도와드리러 나왔다"며 "노숙인 등 이곳에 오시는 분들도 안면이 있는 저 같은 사람이 있어야 즐겁게 대화도 하고 식사하실 수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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