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이 한 달 100번 욕설·협박…"통상적 스트레스로 볼 수 없어"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업무 과로에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림까지 당하다 뇌출혈로 숨진 근로감독관에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유진현 부장판사)는 A씨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라"며 낸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2016년 2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서 진주지청으로 전보돼 근로감독관으로 근무했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관사에서 지냈다.
업무시간은 주5일 근무가 원칙이지만 진주지청의 관할 범위가 넓은 데다 A씨가 맡은 사건이 유독 많아 평일엔 거의 자정이 다 돼야 퇴근했다.
그해 5월 중순엔 해고 근로자 B씨의 진정사건을 맡게 됐는데 그야말로 '골칫거리' 민원이었다.
B씨는 '무조건 해고 예고 수당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며 처음 일주일간은 5차례, 다음 한 달간은 65차례, 그다음 한 달엔 무려 98차례나 A씨의 사무실과 휴대전화, 고객지원실 등으로 전화해 욕설과 협박을 했다.
A씨의 카카오톡으로 '가만두지 않겠다, 죽고 싶어 환장했느냐, 검찰에 고소하겠다, 노동청에서 잘라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성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새벽이나 밤, 휴일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A씨에게 전화해 자기 주장을 반복했고, 2∼5분 간격으로 전화하거나 전화를 끊지 않고 1시간 이상 같은 말만 되풀이하기도 했다.
이런 생활을 두 달가량 버티던 A씨는 그해 7월 20일 아침 관사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뇌출혈이었다.
유족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A씨의 뇌출혈이 직무 수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보상금 지급을 거절했다.
법원은 그러나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의 뇌동맥류와 겹쳐서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망인은 과중한 업무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특정 민원인의 반복된 악성 민원을 감내하면서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근로감독관 업무에 따른 통상적인 스트레스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은 망인의 사망 직전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해왔다"며 "결국 공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 뇌동맥류와 겹쳐 뇌출혈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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