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재로 선회하며 비핵화 압박…北, 반발하며 대미비난 수위 높일 듯
北·美에 낀 南, 종전선언 중재·정상회담으로 중재역할 되살리기 고심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대화를 통한 평화 만들기를 주도해온 남북미 3국이 안팎의 변수에 발목이 잡히면서 8월 한반도 정세가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지난달 27일 북한의 유해송환에도 미국은 3일(현지시간) 북한과 거래한 러시아은행 1곳과 중국과 북한의 법인 등 북한 연관 '유령회사' 2곳, 북한인 1명에 대한 대북제재조치를 취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이날 싱가포르에 도착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은 비핵화를 약속했고 세계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내에서 그(김 위원장)가 그렇게 하길 요구했다"며 "그들(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하나 또는 둘 다를 위반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대화보다는 제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 특히 핵·미사일 관련 시설의 신고조치를 끌어내겠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종전선언을 위해 필요한 북한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에 대해 질문받자 "핵시설 명단을 제출하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미국이 추구하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로 가는 출발점은 핵시설 명단의 제공"이라고 강조했다.
또 제재 쪽으로 선회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상황을 관리하려는 의도도 동시에 읽힌다.
실제로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코리 가드너 의원과 린지 그레이엄 의원, 마르코 루비오 의원,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 댄 설리번 의원은 3일(현지시간) 추가 대북제재와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등 최대한의 대북 압박 정책을 지속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미국의소리방송(VOA)가 전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압박 위주의 대북정책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문하는 셈으로, 트럼프 정부로서는 마냥 무시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열린 한국전 참전 미국인 유해 봉환행사를 거론하며 "우리가 훌륭하고도 사랑하는 전사자 유해를 고향으로 보내는 과정을 시작하는 약속을 지켜준 데 대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고 사의를 표하고 "당신의 '좋은 서한'(nice letter)에 감사한다. 곧 보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정치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북한을 비핵화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일 '판문점선언 이행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논설에서 "지금 미국은 싱가포르 조미공동성명과는 배치되게 일방적인 비핵화 요구와 '최대의 제재압박'을 고집하면서 북남관계의 '속도조절'까지 운운하고 있다"며 "미국의 이런 부당한 입장과 태도가 조미관계 개선의 장애로 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제재 중심의 정책이 북미 간의 대화나 관계개선의 흐름에 영향을 줄 것이고 종국적으로 비핵화의 흐름에도 영향을 줄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실제 ARF에 참석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양자회담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제재에 대응해 맞설 카드가 마땅치 않다. 핵실험장과 서해 위성 발사대 철거작업을 벌여 마땅한 카드가 없어 당분간 행동 대신 말로 대미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남쪽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언급함으로써 남쪽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북한이 남쪽의 요청에도 ARF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장관과 리용호 외무상의 회담을 거부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측은 외교장관 회담에 응할 입장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외교장관회담의 무산은 미국이 협상에서 속도를 내도록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해달라는 불만 표시도 담겨있다"며 "미국을 압박해달라는 촉구의 메시지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올해 1월부터 한반도 해빙의 중재자와 촉진자 역할을 해온 남한 정부도 북한을 설득하고 현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제재 전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국 정부에 대해 제재를 강조하고 있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설치·운영에도 애를 먹고 있다.
판문점선언과 후속회담을 통해 합의한 남북 간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발목잡기가 이어지는 셈이다. 이러다 보니 문재인 정부에 의지하며 현 국면을 이끌어온 북한의 불만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노동신문은 지난 20일 "남조선 당국은 우리와의 대화탁에 마주앉아 말로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떠들고 있지만,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북남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적인 조치들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북한은 최근 방북한 남쪽 인사들에게도 남북 당국회담을 해도 공동조사 같은 합의만 이뤄질 뿐 실제 행동조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종전선언의 조기 성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고 북미관계를 다시 대화 쪽으로 물꼬를 트는 방향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정부가 종전선언에 대해 법률적 효과를 가급적 배제하는 '정치 문서'로 추진하고, 문안은 최대한 간소화해 조기 채택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다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가을 남북정상회담을 조속히 추진해 대화의 불씨를 이어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최근 남북 양측이 장성급군사회담을 열고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합의하는 데 집중하는 것도 판문점선언의 3개 항 중 제재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남북한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실행함으로써 정상회담의 동력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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