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대폭염'은 무얼 가르쳐 줬나

입력 2018-08-07 06:05  

'시카고 대폭염'은 무얼 가르쳐 줬나
신간 '폭염 사회'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1995년 7월 13일 시카고는 화씨 106도(섭씨 41도)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체감온도는 52도까지 치솟았다.
일주일간 지속한 폭염으로 7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런 사망자 수는 1871년 300명이 사망한 시카고 대화재의 두 배가 넘는다. 1995년 168명이 사망한 오클라호마 폭탄테러나 1996년 230명이 사망한 TWA 800 항공기 추락사고와 비교해도 몇 배나 더 끔찍한 참사였다.
하지만 다른 사건들은 기억해도 시카고 대폭염을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폭염은 재산 피해를 내는 것도 아니고 홍수나 폭설처럼 스펙터클한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으며, 희생자도 대부분 눈에 띄지 않는 독거노인이나 빈민층이기 때문이다.
신간 '폭염 사회'(글항아리 펴냄)는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하지만 그 위험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폭염을, 마치 사인 규명을 위해 시체를 부검하듯 사회적으로 해부한다.



메스를 든 이는 에릭 클라넨버그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다.
그는 "시카고 대폭염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때조차 우리가 사는 방법과 죽는 방법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현대 도시의 조건을 가늠하는 하나의 척도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카고 폭염의 상처는 1990년대 미국 도시를 주도하는 부와 번영의 대서사에서 별것 아닌 사건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책은 폭염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기상이변으로 인한 가장 치명적인 형태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폭염 때문에 2003년 유럽 전역에선 7만여 명이 사망했고, 2010년 러시아에선 5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쌓여가는 온실가스로 2080년부터는 시카고 대폭염보다 강력하고 치명적인 폭염이 매년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책은 나아가 폭염 자체만큼 위험한,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키운 실패의 원인을 '사회적 해부'를 통해 규명한다.
저자는 시카고 폭염 사망자 지형도가 인종차별 및 불평등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또한 유사한 환경에서도 공동체 네트워크가 무너져 고립된 채 방치된 사람이 많은 지역일수록 피해가 컸다는 사실도 밝혀낸다.
"도시와 공동체,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학을 수년간 연구하면서 재난이 닥쳤을 때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시민사회라고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시민이 단독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정부건 시민단체건 도시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기술은 단지 재난 피해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도 건강과 번영을 촉진하는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저자는 폭염 피해를 현대 도시들이 노출하는 구조적인 문제들로 확장한다.
점점 늘어가는 도시 취약계층 위한 강력한 공공정책을 요구하는, 현대 도시의 전형적인 위험들이 폭염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기후 같은 극단적인 외부의 힘이 그토록 파괴적인 이유는 부분적으로 새롭게 나타난 고립과 민영화, 극단적인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현대 도시 여기저기에 퍼져 있는 부와 가난이 집중된 구역 등이 취약한 주민에게 사계절 내내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홍경탁 옮김. 472쪽. 2만2천원
abullapi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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