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벌인 치매 인식 개선 프로젝트 책으로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이 레스토랑에서는 주문한 요리가 정확하게 나올지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규칙'이 장난이 아니라 진지한 것일 수밖에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치매 환자들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오히려 함께 즐기세요"라는 것이 이 레스토랑의 콘셉트다. 이런 이색 레스토랑이 실제로 일본에서 시도됐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서다.
새로 나온 책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았다. 프로젝트 기획자인 NHK PD 오구니 시로가 쓴 책이다.
저자가 이런 기획을 하게 된 것은 2012년 겪은 일 덕분이다. 우연한 기회에 치매 환자 간병으로 유명한 와다 유키오 씨가 총괄하는 시설을 취재하러 갔다가 그곳 할아버지, 할머니들로부터 점심을 대접받게 된다. 그런데 그날 식탁 위에 등장한 것은 예정된 메뉴인 햄버그스테이크가 아니라 만두였다.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리다 이내 그들이 인지 장애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 그때 떠오른 키워드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었다고.
"물론 이 식당 하나로 치매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수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 실수를 함께 즐기는 것, 그런 새로운 가치관이 이 식당을 통해 발신될 수 있다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그 설렘을 주체하지 못하고 2016년 11월, 본격적으로 함께 일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18쪽)
이후 저자는 3개월 만에 각 분야 전문가를 모아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실행위원회'를 발족하고, 지난해 6월 3일과 4일 작은 레스토랑을 빌려 이 기획을 시험하게 된다. 첫 시험 결과는 대성공.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실행위원회 멤버인 유명 인사들이 SNS에 이를 소개하고 다른 유명인들이 이곳을 실제 다녀가 언론과 SNS를 통해 알리면서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까지 오른다. 일본 내 각종 방송, 신문, 잡지는 물론, 한국, 중국, 미국, 영국, 독일 등 세계 20개국 미디어에서 취재를 원하며 연락해온다.
노르웨이에서는 이런 기사까지 나왔다고 한다.
"일본의 이 프로젝트는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바로 주변에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노력이 있다면, 치매 환자도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치매 환자를 과소평가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점이다. 치매 환자를 대할 때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이해하려는 관용과 배려만 있다면 우리 사회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게 될 것이다." (27쪽)
물론 이곳에서는 좌충우돌 뒤죽박죽 갖가지 소소한 사건·사고들이 벌어지고, 짧은 시간 운영에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한마디로 너무나 정신이 없고 자극적인 분위기입니다.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완전히 록(Rock) 계통이랄까. 예를 들면 손님에게 물을 두 잔씩 가져다 드리는 일은 다반사. 샐러드에 스푼이 나가고 뜨거운 커피에 빨대를 내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받을 때 내용을 틀리지 않도록, 고심 끝에 주문표도 제작했는데요. (…) 할머니들이 그 주문표를 아예 손님들에게 건네고는 손님들이 직접 적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테이블 번호도 한눈에 들어오도록, 번호가 적힌 팻말을 테이블 위에 얹어두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할머니들" (25쪽)
그런데도 손님들은 모두 즐거워했고, 참가한 치매 노인들은 즐겁게 일한 과거를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되찾고 삶의 활력을 얻게 된다.
이 프로젝트는 KBS에서 취재한 뒤 이를 본뜬 방송을 제작하기도 했다. '주문을 잊은 음식점'이라는 이름으로 이연복 셰프와 방송인 송은이가 참여해 경증 치매 노인들과 함께 며칠간 식당을 운영했다. 이 내용이 2부작으로 9일과 16일 밤 10시 KBS 1TV 'KBS스페셜'로 방송된다.
김윤희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32쪽. 1만4천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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