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의 재조사 통해 가혹행위 드러나…법원 "인과관계 인정"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군대 내 가혹 행위의 여파로 목숨을 끊은 신병에 대해 22년 만에 "보훈보상 대상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유진현 부장판사)는 군 복무 중 사망한 A씨의 부모가 서울지방보훈청을 상대로 "보훈보상 대상자 비해당 결정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1996년 공군에 입대한 A씨는 훈련을 마치고 한 비행단의 헌병대대에 배치됐으나 전입 후 닷새 만에 경계근무를 서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사망 직후 이뤄진 조사에서는 부대 선임병이나 동료들로부터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진술이 나오지 않았고, 타살의 혐의점도 발견되지 않아 단순 자살로 사건이 종결됐다.
그러나 18년이 지난 2014년 부모의 요청으로 이뤄진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조사 결과는 판이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조사에 응한 동료들은 당시 선임병들이 전입한 신병에게 근무 수칙 외에도 150∼200명의 지휘관·참모 차량 번호와 관등성명, 소대 병사들의 기수, 초소 전화번호 등을 3일 내에 외우도록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그 때문에 신병들은 심야 시간에도 화장실 등으로 숨어 암기사항을 외워야 했다. A씨가 사망 당일 점심도 거른 채 암기를 거듭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A씨가 전입한 이후 부대에서는 취침 시간에 선임병들이 후임병들을 불러내 '머리 박기'를 시키는 등 가혹 행위를 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1996년 조사 때 "평소 내무반에서 구타나 가혹 행위는 전혀 없었다"며 자살의 원인을 A씨의 성격 탓으로 돌렸던 B 상병이 사실은 후배를 괴롭히기로 유명한 선임병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B 상병은 A씨의 사망 전 사흘간 계속 같은 근무조에 편성돼 있었다.
A씨는 야간 근무를 마친 뒤 주어져야 할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 채 곧바로 주간 근무에 돌입하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조사 결과에 따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 심사위원회는 A씨의 사망이 '순직'에 해당한다고 결정했다.
국방부의 결정 이후 A씨의 부모는 서울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및 보훈보상 대상자 등록 신청을 했으나 인정받지 못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A씨의 자살은 군 복무와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는 심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부담 등 정서적 불안 요소가 가중되면서 자유로운 의사가 제한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가정의 문제를 비관하는 등의 이유로 자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방부 중앙전공사상 심사위원회의 심사는 국가유공자 제도나 보훈보상대상자 제도와 구별되지만, 보훈보상대상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데도 중요한 판단자료가 된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위원회의 판단은 가급적 존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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