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기념공원서 6·25전쟁 실종자·전쟁포로 7천704명 이름 부르며 추모
북미 정상합의 첫 이행 유해송환 맞물려 가족들 기대감 고조
美 DPAA 국장 "유해송환, 희망의 씨앗…희생 잊지 않고 작업 계속"
(워싱턴=연합뉴스) 송수경 특파원 = "상사 리처드 프랭크 애벗, 이등병 도널드 레이먼드 에이블, 중사 프랜시스 하워드 어빌…"
꽃다운 나이에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끝내 고국으로 살아 돌아오지 못한 미국 전쟁포로(POW) 및 전쟁실종자(MIA)들의 이름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나지막이 하나둘씩 울려 퍼졌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사업재단(KWVMF·이사장 윌리엄 웨버)이 연 '진혼'의 호명식에서다.
호명식은 올해로 4회째를 맞았다. 첫해인 2015년 미군 전사자 3만6천574명, 2016년 미 8군 한국군 지원단(카투사) 7천52명, 지난해 유엔군 전사자 3천300명에 이어 올해는 전쟁 포로(POW) 및 전쟁실종자(MIA) 7천704명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 일일이 부르는 방식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다.
실종자 가족과 참전용사 등 자원봉사자 250여 명이 낭독자로 참여, 1인당 30명의 이름을 부르며 병사들의 넋을 기리고 이들 모두의 유해가 하루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했다. 행사에 참석한 조윤제 주미 한국대사와 표세우 국방무관,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켈리 맥키그 국장 등도 낭독자로 나섰다.
올해 행사의 호명 대상으로 전쟁포로와 전쟁실종자가 정해진 것은 지난해 가을이지만, 마침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라 지난 1일 55구의 유해송환이 이뤄진 것과 맞물려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호명식'이 됐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희망도 묻어나왔다.
앞서 한국전쟁참전용사협회(KWVA)가 6·12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유해송환을 정상회담 의제로 채택해 달라고 요청하는 서한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으로 보냈던 것으로 알려지는 등 유해송환 및 신원 확인은 실종자 가족과 참전용사들에게는 오랜 한을 푸는 숙원 과제이다.
실제 지난 9∼10일 워싱턴DC에서 이틀간 열린 DPAA 연례총회에는 유해송환에 따른 기대감을 반영하듯 실종자 가족 등 참석자 규모가 지난해 450명가량에서 790명가량으로 크게 늘었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조 대사와 맥키그 국장이 각각 실종자 유족들과 나란히 헌화하는 순서로 시작한 뒤 추모연주와 추모의 기도 등으로 이어졌다.
맥키그 국장은 인사말에서 "오늘날의 철통 같은 한미 동맹은 68년 전 전장에서부터 구축됐다"며 "유감스럽게도 7천700명의 미국민이 아직 한국전에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들의 복무와 희생은 한국과 한국민이 누리는 평화와 안보, 안정, 번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을 거론하며 "이번 55개 관에 담겨온 유해송환은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을 준다"며 "저 멀리 타국에서 알지 못하는 이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삶을 바친 이들을 되찾아 송환하고 기리는데 전념하고자 하는 미국의 확고한 의지는 우리나라가 지켜온 가치들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종자 규모가 상당하고 따라서 그들을 찾기 위한 노력이 쉽지 않은 도전임에도 불구, 그들의 지대한 희생과 그 가족에게 우리가 지고 있는 빚을 결코 잊을 수 없기에 DPAA에 속해 있는 우리는 굴하지 않고 계속 이 작업을 해나갈 것"이라며 "이 나라도 결코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사는 인사말에서 "우리는 오늘 한국전에 참전해 작전 중 실종된 7천700명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이들의 헤아릴 수 없는 희생에 기반을 둔 한미 동맹은 전후 한국을 뒷받침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경제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한미 동맹이 피로 새겨진 혈맹이라고 불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을 향해 유해송환을 언급, "한국전 당시 실종된 병사들의 유해가 싱가포르 회담의 합의 결과로 고국으로 돌아온 직후 여러분을 만나게 돼 더 뜻깊다"며 "한국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러한 임무는 모든 이들이 가족 품에 안길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휠체어에 의지해 행사에 참석한 웨버 이사장도 한국전 참전 실종자들을 추모했다.
실종자 가족을 대표해 조 대사와 함께 헌화했던 주디스 브리턴(72) 씨는 호명 식에서 삼촌 '중위 찰스 멜빈 앤드루스'의 이름을 담담하게 불러 내려갔다. 남편과 함께 뉴멕시코에서 왔다는 그는 직후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울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도착해 몇 번이나 차분하게 이름을 부르는 연습을 했다"며 마침 55개 관의 유해송환이 이뤄진 가운데 호명식이 열린 데 대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평화와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돌아온 유해 가운데 삼촌이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면서 "유해 신원 확인작업이 CSI 과학수사대처럼 하루아침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정한 과정이 필요한 일이지만, 기다리는 가족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는 만큼 가급적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한미 정부가 유해송환을 위해 애써준 노력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공군이었던 그의 삼촌 앤드루스 중위는 '1951년 5월 순안 공군기지 인근에서 타고 있던 전투기가 격추돼 스물세 살의 나이로 전사했다'고 브리튼 씨는 회고했다. 1950년 크리스마스 때 잠시 휴가차 미국 집에 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며 기념사진을 찍은 게 그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삼촌의 마지막 모습이 됐다.
삼촌과 헤어질 때 5살이었다는 브리턴 씨는 6·25 전쟁 직전 삼촌의 근무지였던 일본 기지에 보관돼 있던 그의 유품 반지를 손가락에 낀 채 "지금 이곳에 삼촌이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그의 '귀환'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거듭 피력했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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