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만세운동 주도…6번 탈락 끝에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강태하·신계선·조무빈·한백흥 선생도 대통령 표창받아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제주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시범(金時範, 1890∼1948) 선생이 99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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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제주지역 독립운동가 4명이 이번에 국가로부터 과거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았다.
국가보훈처와 제주도 보훈청은 제73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김시범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강태하(姜太河, 1897∼1967)·신계선(愼啓善, 1875∼1950)·조무빈(趙武彬, 1886∼1952)·한백흥(韓伯興, 1897∼1950) 선생에게 대통령 표창을 각각 추서한다고 13일 밝혔다.
김시범 선생은 법정사(法井寺) 항쟁(1918)과 해녀항일투쟁(1932) 등 제주지역 3대 항일운동으로 손꼽히는 조천만세운동(1919)을 계획하고 동지를 규합해 실행으로 옮긴 인물이다.
제주에서의 3·1운동은 조천지역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4일간 4차례에 걸쳐 전개됐다.
그는 3월 21일 조천 미밋동산에 모인 김시은(金時殷), 김연배(金年培), 백응선(白應善) 등 13명의 동지들과 함께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수백명의 시위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라고 쓴 혈서와 태극기를 들고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시위행진은 미밋동산에서 조천 비석거리까지 이어졌고, 김시범 선생은 시위를 주도하다 보안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광복 이후 초대 조천면장으로 재임하고,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천면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주의 계열 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시범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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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후손들이 30년 넘게 재판기록 등 독립운동 행적을 찾아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해방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6차례나 심사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포상에 소극적이었던 사회주의 활동자에 대해서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 포상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방안'을 확정하면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시범 선생의 손자인 김용욱(72)씨는 "행적이 뚜렷한데도 역사인식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인정을 못 받았지만, 지금이라도 명예를 회복할 수 있어 가슴에 묻어뒀던 응어리가 풀리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써 할아버지 8촌 형제 중 모두 8명이 국내외에서 펼친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아 훈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 강태하 선생은 1918년 10월 제주도 좌면 하원리(현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법정사 항쟁에 참여해 활동하다 체포돼 벌금 30엔을 선고받았다.
한백흥 선생은 1919년 3월경 조천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학당 훈장으로 민족의 자존회복과 외세를 물리치기 위한 교육을 하던 조무빈·신계선 선생은 1919년 제주도 구우면(현 제주시 한림읍)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제주의 모든 서당 학생들의 시위운동을 계획하다가 체포돼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에 대한 포상은 오는 8월 15일 제주학생문화원에서 개최되는 제73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후손에게 전수할 예정이다.
유족을 확인하고 있는 신계선 선생은 추후 국가보훈처에서 전수할 예정이다.
이로써 제주 출신 독립유공자는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인 강태선 선생(94세)을 비롯해 모두 168명이다.
b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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