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고 문제유출 의혹 일파만파…"씁쓸한 공교육 현실"

입력 2018-08-13 16:28   수정 2018-08-13 16:39

서울 A고 문제유출 의혹 일파만파…"씁쓸한 공교육 현실"
'명문 중 명문'으로 꼽혀…"시험문제 어렵기로 유명"
"보직교사 딸들 학원 테스트서 낮은 레벨 받아"…사교육에 밀린 공교육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강남 8학군 명문고'로 꼽히는 A사립고등학교에서 불거진 '보직부장 교사의 시험문제 유출 의혹'을 두고 교육계에서는 "강남에서 내신성적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입시를 위한 '학생 줄 세우기'에 매몰되고 사교육에 밀린 공교육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씁쓸하다는 이들도 있다.
A고는 보직부장 교사 B씨의 쌍둥이 딸 내신시험 등수가 올해 들어 크게 오르면서 B씨가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준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B씨가 시험출제·관리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어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서울시교육청은 13일 A고 특별장학(조사)에 착수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A고는 '명문 중 명문'으로 평가받는다.
학생들은 일반고인 A고를 'A외국어고'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해서 가는 외고만큼 우수학생들이 많다는 의미에서다.
강남구에서 대형학원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A고는 강남에서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명문고로 자율형사립고나 외고보다 대입결과가 좋다"면서 "A고 전교 1등이면 서울대 합격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 지금 A고 일이 최대이슈"라면서 "A고는 우수학생이 많아 성적관리가 엄격하다고 알려졌던 터라 학부모들이 이번 일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A고 시험문제는 수준이 높고 어렵기로 유명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문제유출 의혹을 제기하는 쪽은 B씨 딸들의 등수가 급등했다는 점과 함께 이들이 유명 수학강사가 운영하는 수학학원 레벨테스트에서 비교적 낮은 레벨을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학교 시험성적보다 학원 레벨테스트가 학생의 실력을 나타내는 더 정확한 지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입시전문가는 "해당 학원은 영재학교나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면서 "레벨테스트로 학생들 반을 나눈 뒤 철저히 관리하는 학원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이 학원은 총 5개 레벨 반을 운영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학교성적이 최상위권인 학생도 가장 높은 레벨인 '1레벨'을 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레벨테스트 자체가 어려워 주기적으로 테스트에 응시해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보는 학생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유출 의혹이 확산하자 B교사는 학교 홈페이지에 해명글을 올렸다.
B교사는 해명글에서 "아이가 하루에 잠을 자는 시간이 4시간을 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눈길을 끌었다. 학력고사 시대 때 유행하던 '4당5락'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4당5락은 '4시간 자면 대학합격, 5시간 자면 불합격'이란 뜻으로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강남 대형학원 원장 이모씨는 "A고 상위권 학생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가 되면 대부분 하루 4시간도 못 잔다"고 설명했다.
성적경쟁에 시달리는 고교생들의 수면부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2016년도 학생 건강검사' 결과로 765개 표본학교 학생 8만2천여명의 수면시간을 파악해보니 고교생 43.9%가 하루 6시간을 못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의혹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공교육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씁쓸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명문고로 꼽히는 학교의 교사도 자녀를 학원에 맡기는 현실에 "교사도 학부모인데 어쩔 수 있느냐"는 자조도 흘러나온다.
교편을 잡은 지 30년이 넘었다는 경기도 한 고교 교사는 "수시모집 비중이 늘어나다 보니 학생들이 내신성적에 굉장히 신경 쓴다"면서 "학생들이 어떻게든 1등급을 받으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서울 한 고등학교 교감은 "자녀를 학원에 못 보내는 교사는 있어도 안 보내는 교사는 없다"면서 "학생성적이 크게 오르면 축하해주는 것이 아니라 의심부터 해야 하는 세태가 씁쓸하다"고 말했다.
jylee2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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