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으깨진 발" 걱정한 노벨문학상 쉼보르스카

입력 2018-08-14 11:07  

"춘향의 으깨진 발" 걱정한 노벨문학상 쉼보르스카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 출간…춘향전 서평도 수록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노벨문학상(1996년)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출판사 봄날의책)가 번역 출간됐다.
이 책에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시인이나 폴란드를 대표하는 지성으로서 내놓는 무게 있는 발언이 아니라,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는 순수한 '애호가'로서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작가는 자기 감정에 충실하며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독서광으로서 그의 독서 편력은 전방위적이다. 문학 작품은 물론 인물 전기, 학술서, 역사논평 등 묵직한 책들뿐 아니라 요리책, 여행안내서, 자기계발서, 실용서, 식물도감까지 망라한다. 특히 동서양 고전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 고전인 '춘향전'에 관한 서평도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란 제목으로 번역된 폴란드어판 책을 읽고 줄거리를 자세히 소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도령은 멀리 떨어진 한양에 가서 '검푸른 구름 위로 높이 오르기 위해', 좀 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관직을 얻고 출세를 하기 위해 춘향을 떠나게 되었다. 가여운 춘향의 눈물도 애원도 소용없었다. '만 개의 버드나무 가지가 떠나는 바람을 잡을 수 있겠는가?' 결국 춘향은 홀로 남겨졌고, 언젠가는 연인이 돌아오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의지한 채, 무슨 일이 있어도 절개를 지키겠노라 굳게 결심했다." (87쪽)
이어 그는 "한국 고전문학의 정수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이 찬사를 받는 여러 이유를 열거하며, 리얼리즘을 중시하는 관점으로 동화나 민담을 미성숙한 하위 문학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춘향전 같은 동화나 민담이 리얼리즘을 뛰어넘는 문학성을 보여준다는 취지로 춘향이 무자비한 매질을 당한 뒤 해피엔딩을 맞는 결말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 춘향에 관한 이야기조차도 그런 사람들에겐 이따금 안면근육의 경련을 일으키게 만들 것이다. 매우 강렬한 해피엔딩을 맞고 있지만, 사실 거기에 춘향의 으깨어진 두 발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으니 말이다. 과연 춘향의 발꿈치뼈는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잘 붙었을까. 안심해도 좋다. 완벽하게 잘 아물었을 것이다. (…) 동화는 결코 현실의 삶에 완전히 항복하는 법이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이다. 틈만 나면 훨씬 나은 자신만의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현실을 난처하게 만든다."
중국 고전 '삼국지'를 읽고서는 300명에 달하는 인명이 통일되지 않아 아무리 읽어도 내용이 파악되지 않고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다고 불평하며 번역과 편집 문제를 지적했다.
이 책에 나온 여러 서평을 읽노라면 그가 어떤 작가와 어떤 음악, 어떤 영화를 좋아했는지도 알게 된다.
찰스 디킨스 전기를 읽고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그를 행운아라고 이야기하는 건, 인생의 전반기에 겪은 수모와 고통도, 그리고 후반기에 획득한 눈부신 성공도 결코 그를 타락시키거나 망가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편에 서 있었다. 그의 언어는 바로 이런 불행한 사람들을 옹호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양심의 가책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었다." (142쪽)
최성은 옮김. 460쪽. 2만원.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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