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난민 문제 핵으로 다시 떠오른 구조선 아쿠아리우스호

입력 2018-08-14 19:36  

유럽 난민 문제 핵으로 다시 떠오른 구조선 아쿠아리우스호
리비아 근해서 141명 구조했지만 유럽국가들에 잇따라 입항 거부당해
난민수용 적극적인 스페인, 이번엔 사태 관망…지브롤터 "선적 박탈" 경고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지중해의 난민구조선 아쿠아리우스호를 어느 나라가 수용할지를 놓고 유럽 국가 간에 갈등이 재점화하고 있다.
난민 문제에 극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이탈리아가 아쿠아리우스호의 입항을 또 거부한 가운데, 오갈 데 없는 난민선에 손길을 내밀어 온 스페인은 이번에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프랑스가 중재자를 자처하며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아쿠아리우스호 수용 문제를 놓고 협의에 들어갔지만, 각국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해법이 금방 찾아질지는 미지수다.
아쿠아리우스호의 선적지인 영국령 지브롤터는 20일까지 배의 본래 사용 목적인 해양탐사선으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선적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다.

◇伊, 이번에도 제일 먼저 입항 거부…佛 "EU 국가들과 협의"
먼저 아쿠아리우스호를 거부한 것은 아쿠아리우스호가 난민을 구조한 리비아 근해에서 가장 가까운 이탈리아와 몰타였다.
지난 6월 17일 스페인 발렌시아 항에 난민 629명을 내려놓은 뒤 활동을 재개한 아쿠아리우스호는 지난 10일 리비아 앞바다에서 난민 141명을 구조한 뒤 이탈리아에 입항 가능 여부를 타진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거부당했다.
이탈리아 극우·포퓰리즘 성향 연립정부에서 강경한 난민 반대 기조를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은 트위터에서 "이 배는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다. 다만 그곳이 이탈리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반도 남쪽의 작은 섬나라 몰타 역시 아쿠아리우스호를 거부했다.
이 난민선은 현재 몰타와 이탈리아 람페두사 섬 사이의 해역에서 입항할 국가를 수소문하면서 대기 중이지만, 난민을 받겠다는 나라가 없어서 애를 먹고 있다.
이탈리아와 몰타 다음으로 아쿠아리우스호의 현재 위치에 가까운 나라인 프랑스도 이 배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도시 세트의 항만청이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들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발 벗고 나선 데 이어 코르시카 자치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이번에도 동참했다.
그러나 난민선 입항에 대한 최종 허가권을 쥔 중앙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입항 거부를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항구를 내줄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프랑스 대통령실 엘리제궁은 "아쿠아리우스호를 둘러싼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면서 이 난민선에 안전한 항구를 찾아주기 위해 EU 국가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지난 6월 아쿠아리우스호가 629명의 난민을 태우고 지중해를 표류할 때도 항구를 내주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그러면서 난민선의 입항을 거부한 이탈리아를 "무책임하고 냉소적"이라고 비난했는데, 이탈리아와 국내 좌파진영으로부터 "난민선을 거부하면서 다른 나라를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두 달 전 아쿠아리우스 받아준 스페인, 이번엔 유보적…"사태 일단 관망"
지난번에 오갈 데 없던 신세였던 아쿠아리우스호에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던 스페인은 이번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며 사태를 관망 중이다.
스페인 정부 당국자는 "현재로서는 스페인이 아쿠아리우스호의 안전한 목적지가 아니라고 본다"면서 개입하지 않을 방침임을 시사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6월 초 취임 후 난민 문제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온 스페인 사회당 정부는 난민들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받을 경우 이미 포화상태에 다다른 난민수용능력이 한계에 도달해 국내에서 '역풍'이 불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쿠아리우스호의 등록지인 스페인 남단의 영국령 지브롤터는 아예 이 배의 선적(船籍·배의 국적)을 박탈하겠다고 밝혀 아쿠아리우스호의 처지를 곤혹스럽게 했다.


이탈리아가 아쿠아리우스호가 영국령 지브롤터에 선적이 있으므로 영국이 구조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지브롤터 자치정부가 아예 선적을 박탈하겠다고 맞불을 놓은 것.
지브롤터 자치정부는 아쿠아리우스호의 적극적인 난민구조 활동이 이슈가 되자 본래 용도인 해양탐사 목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선적을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해오다가 8월 20일까지로 시한을 못 박았다.
아쿠아리우스호는 2009년 지브롤터에 배를 '해양탐사' 용도로 등록했지만 2016년 프랑스에 본부를 둔 구호단체 'SOS 메디테라네'와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임차한 뒤부터 난민들을 본격적으로 구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 20일 이후에 아쿠아리우스호는 영국령 지브롤터 선적을 박탈당하고 원래 등록지인 독일 선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지브롤터 자치정부는 설명했다.
유럽국가들 사이에 계속 해법이 찾아지지 않으면 아쿠아리우스호는 결국 두 달 전과 마찬가지로 스페인으로 기수를 돌릴 가능성이 크다.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 67명과 임신부 2명까지 구조한 상황에서 마냥 현 위치에서 가까운 나라들의 입항허가 소식을 기다릴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아쿠아리우스호를 운영하는 SOS 메디테라네는 "유럽국가들이 책임 있는 자세로 해법을 마련하고 지중해에 안전한 항구를 확보해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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