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주 교수, 신간 '가족과 통치'서 분석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1960∼70년대 국가가 주도한 가족계획사업이 우리 사회 성(性) 담론을 개방하고 산업자본주의 확립과 함께 여성을 주체화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조은주 명지대 교수는 최근 펴낸 저서 '가족과 통치'(출판사 창비)에서 '근대가족 만들기'와 '여성의 주체화'란 두 개의 장을 할애해 가족계획사업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가족계획사업이 전국적으로 보급한 피임술의 목적은 단순하게도 섹슈얼리티를 재생산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라며 "섹슈얼리티와 재생산의 분리를 가능케 하는 기술적 차원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성행위와 임신 및 출산을 분리시켜 사고하는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일상적인 피임이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출산조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동시에 피임의 개념 및 실천을 친숙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 1968년부터 발행·배포된 대한가족계획협회 기관지 '가정의 벗'은 매호에 걸쳐 부부 성생활의 구체적인 내용과 외국의 성실태 등을 자세히 다뤘다.
저자는 이 잡지에 실린 여러 글을 인용하며 "'가정의 벗'은 성적 욕망을 긍정하는 것은 물론 성적 행위의 기술을 강조하고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글을 끊임없이 게재했다"며 "가족계획의 성 담론은 성에 대한 금기나 억압, 통제, 금욕적 태도나 보수적 입장과는 완전히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또 "가족계획의 성 담론에서 특징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여성의 성적 욕망을 강조하고 성을 향유할 여성의 권리를 부각시켰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인용된 '가정의 벗' 1969년 4월호에 실린 경기도 한 가족계획어머니회 소개 기사에는 "5천년 동안이나 우리의 아낙네들은 성생활을 비롯해서 모든 부면에 있어서 전연 주체성을 갖지 못했"으며 "항상 남자들의 일방통행식 행동으로서 남자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라가는 노예적인 생활을 취해왔을 뿐", "그러나 가족계획이 시골에 퍼져 각 가정에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하므로부터 이런 일방통행은 차차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저자는 가족계획사업 이후 사랑과 결혼, 섹슈얼리티의 결합이 이뤄지면서 "새로운 가족- 본격적인 자본주의 산업화와 함께 등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 전혀 새로운 종류의 가족의 정상성(normalcy)"이 대두했다고 분석한다.
또 "근대 이후 나타난 인구의 관리와 조절은 국가의 강렬한 통제와 감시 아래 여성들을 단순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마치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에게 주어진 이중의 자유와 유사하게 여성들의 삶에 주어진 자유와 주체화의 과정은 여러 차원에서의 종속화의 과정이었다", "여성을 근대적 개인으로 만든 자유에 의해 여성의 삶은 가족관계와 남성의 일대기에 더욱 종속되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이런 근대국가 통치 핵심이던 가족 모델과 그 안에서 철저히 성별화한 어머니·아버지의 역할 구분 방식이 근대 이후 전개된 개인화(individualization)로 무너지고 있다며 "개인화 과정은 여성과 남성을 핵가족에 규정된 젠더 역할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성별화된 헌신을 버리는 대신 이들은 노동시장에 의존해 그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일궈내야만 한다"고 현대 사회를 진단했다.
376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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