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새 정부 출범후 '리비아→이탈리아' 루트 막히자 난민들 스페인으로 몰려
소수내각의 한계…좌·우 양쪽 요구에 모두 귀 기울여야 하는 상황
산체스 정부, EU에 "스페인만의 문제 아니다" 해법 마련 촉구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유럽 주요국 지도자 중에 난민 문제에 가장 포용적인 행보를 보여온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자국으로 몰려드는 난민들로 인해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다.
산체스 총리는 취임 직후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 문제에 포용적인 입장을 잇달아 내놨지만,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이 스페인으로 쏠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소수내각이라는 한계를 안고 출범한 사회당 정부는 난민 문제를 두고 좌·우 진영 양쪽의 눈치를 살피며 유럽연합(EU) 차원의 해법이 마련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정권교체로 이탈리아 루트 가로막히자 스페인으로…쏠림현상 심각
스페인은 지난 13∼15일 사흘간 1천200명이 넘는 난민을 지브롤터 해협 등 근해에서 구조했다. 이들은 소말리아와 에리트레아 등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남부,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방 출신 난민들로 가난과 내전 등을 피해 유럽행을 택한 사람들이다.
스페인으로 들어오는 아프리카 난민은 최근 들어 매우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국제이주기구(IMO)에 따르면 올해 스페인의 난민 입국자 수는 8월 초까지 2만5천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가량으로 급증했다. 이달 1∼5일 닷새간 스페인으로 들어온 난민 입국자 수만 이탈리아·그리스의 다섯 배 이상이다.
이런 급증세는 아프리카에서 유럽행을 택하는 난민이 가장 선호하는 경로였던 '리비아→이탈리아' 루트가 사실상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지난 6월 난민에 매우 적대적인 극우·포퓰리즘 성향의 연립정부가 들어선 뒤 구호단체들이 운영하는 난민선의 입항을 전면 거부하는 등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탈리아 내각에서 극우적 성향을 과시해온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이 이끄는 난민정책의 모토는 '난민은 유럽 어디에 가도 좋다. 단, 이탈리아는 아니어야 한다'로 요약된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7월 말까지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 수는 작년 같은 기간의 20% 수준인 1만8천여 명으로 급감했다. 스페인과는 정반대다.
스페인에 난민이 몰리는 또 다른 이유로는 사회당 정부의 난민 포용적 태도가 꼽힌다.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국민당(중도우파) 내각을 의회에서 불신임시키고 집권한 산체스 정부는 이탈리아가 거부한 난민선 '아쿠아리우스'에 입항을 허용하는가 하면, 불법 이민자에 대한 건강보험 부활을 발표하는 등 난민 문제에서 전 정부와는 확연히 차별화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파진영 공세 시작…좌파와 구호단체들도 "난민정책 일관성 없어"
하지만 인도적 위기를 두고 볼 수 없다면서 난민에게 온정을 손길을 보내온 스페인 정부도 난민이 크게 늘자 난감해 하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난민을 무작정 받다 보면 수용 능력의 한계에 직면해 여론도 급격히 악화하는 상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스페인의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들은 우려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해경이 난민을 구조해 데려오는 항구도시 알제시라스시(市)는 정부가 지방자치단체들에 난민 문제 처리를 떠맡겨버리고는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매일 같이 수십∼수백 명의 난민을 근해에서 구조하는 스페인 해경도 인력부족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부패 스캔들에 휩싸여 사회당에 정권을 내준 제1당 국민당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공세에 나섰다.
최근 당 대표로 선출된 파블로 카사도 국민당 대표는 사회당 정부가 내놓은 조치들이 스페인에 더 많은 난민을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산체스 총리가 포섭해야 하는 급진좌파정당 포데모스는 다른 차원에서 현 정부에 비판적이다.
난민정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은 없이 즉흥적이고 일관성이 없는 대응으로 아마추어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 6월 난민 630명을 구조한 뒤 이탈리아와 몰타로부터 입항을 잇달아 거부당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간 갈등을 촉발한 아쿠아리우스호에 스페인 정부는 입항을 허가한 뒤에 각종 특별혜택을 부여해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했지만, 다른 난민선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는 않았다.
스페인 정부가 여론이 집중되는 사안에는 '반짝'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고 그렇지 않은 건에 대해서는 무신경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포데모스의 훌리오 로드리게스 사무총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난민 문제 대처에서 투명하고 일관된 절차를 구축해야 한다. 자의적이거나 그때그때의 정치 어젠다에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구호단체 중에선 스페인 정부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달리 난민 문제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거의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지적들에 대해 스페인 정부는 6월 아쿠아리우스호를 수용한 것은 당시 이 배가 630명의 난민을 태우고 오갈 데도 없이 열흘 가까이 표류하는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연대의 뜻을 보인 것이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럽연합 차원의 해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달리 말하면, 대규모 난민 수용 기조를 지금처럼 계속해서 이어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소수내각 한계로 좌·우 양쪽 눈치만 살펴…유럽연합에 'SOS'
스페인이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유럽연합만 쳐다보는 것은 소수내각이라는 한계 때문이다.
하원(전체 350석) 의석이 84석에 불과한 사회당으로서는 제1당인 국민당(134석)이 슬슬 발동을 걸고 있는 반(反) 난민 여론이 거세지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산체스 총리는 2020년으로 예정된 총선 전에 포데모스 등 다른 좌파와 연대해야 하는데, 우파와 좌파는 난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서 현 정권은 좌·우 양쪽의 눈치를 살피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스페인의 정치분석가 호르헤 갈린도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EU 차원에서 난민 문제의 가시적 해법이 나오면 산체스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난민이라는 난해한 문제에서 길을 잃을 수 있다"면서 "우파로부터는 (난민에) 너무 약하다는 비난에, 좌파로부터는 너무 강경하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yongl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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