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지난 2000년 세계적인 보드카 브랜드 '앱솔루트 보드카'가 패션쇼를 개최했다. 런웨이 위는 터질 듯한 근육의 남성 모델만이 거닐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속옷 차림이거나 꽉 끼는 가죽 재킷을 착용했다.
이는 게이들의 화가로 알려진 '톰 오브 핀란드'의 캐릭터 복장을 오마주한 것이었다. 국내에는 생소하지만 '톰 오브 핀란드'는 서구의 70년대 게이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본명은 토우코 라크소넨으로 필명 그대로 핀란드 사람이다. 그의 일생을 그린 전기 영화 '톰 오브 핀란드'가 30일 국내 관객을 찾아온다.
수위가 높지 않지만 남성 간 신체접촉은 물론 성행위 장면도 담겨 있다. 터질듯한 가슴과 엉덩이 근육, 남성의 성기를 강조한 라크소넨의 드로잉도 고스란히 노출된다.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국내 정서를 고려할 때 한국 관객이 이 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영화는 라크소넨이 왜 동성애에 눈을 뜨게 됐는지부터 설명한다. 라크소넨은 핀란드군의 장교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소련군과 맞선다.
매일 밤 진지 주변 숲은 동성애 상대를 구하는 군인들로 넘쳐난다. 병사는 물론 장교까지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쾌락에 빠져든다. 퀴어 영화를 참지 못하는 관객이라면 차라리 이쯤에서 극장을 나가는 것이 낫겠다.
종전 후 라크소넨은 광고회사에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동성애에 빠져든다. 화장실에서 파트너를 구하다 주먹세례를 당하는가 하면, 동성애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발각돼 쫓기기도 한다.
라크소넨은 억눌린 욕망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그는 하나뿐인 여동생도 모르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 콧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낀 채 가죽 재킷을 입은 마초들이 노골적인 성행위를 하는 그림 수천 장을 그려냈다.
그의 그림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반향을 얻었다.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다. 유럽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인 미국에서 '톰 오브 핀란드'의 그림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게이 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할 것으로 여기던 미국 내 성 소수자들이 라크소넨의 그림에 용기를 얻어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톰 오브 핀란드'는 현대 미술의 거장들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 팝 아트의 선구자이자 현대 미술의 아이콘인 앤디 워홀은 '톰 오브 핀란드' 전시회에 직접 찾아갔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력을 인정해 그의 드로잉 다수를 연구소장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서구사회가 성 소수자에게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톰 오브 핀란드'는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kind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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